퍼온글모음/창골산 칼럼

십자가 주변에서 발건된 신앙인들

여수룬1 2006. 9. 12. 14:14

십자가 주변에서 발견된 신앙인들(마가복음 15: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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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구원의 완성을 이룰 때 얻은 신앙인들은 제자도 아니요,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이나 이스라엘인도 아닌 것을 성경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십자가 신앙을 가진 자 중에 예수를 추종했던 제자들은 십자가 신앙을 갖지 못했으며 또한 종교지도자들은 더 더군다나 십자가 신앙을 얻지 못했고 예수를 따랐던 군중들은 왜 십자가 신앙을 얻지 못했을까? 의구심을 갖고 살펴보기로 하자.

그렇다면 그 내용과 사건들을 오늘 현재에다 적용한다면 과연 나는 어느 부류에 해당할 것인가? 십자가를 달고 다니며 신앙인임을 자처하던 우리의 십자가 신앙을 다시 고려해야 하지 않겠느냐? 십자가 신앙을 가진 신앙인들은 이스라엘인이 아닌 이방인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면 첫 번째 십자가 주변 신앙인은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던 길에서 만났던 구레네 시몬이다.(21-22) 억지로 십자가를 졌던 시몬은 현재 아프리카에 이디오피아 출생인으로 “검다”는 단어의 의미를 갖고 구레네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익어진 존재’를 의미하고 있다. 또한 억지로 십자가를 졌다는 의미에서 ‘억지로’는 ‘앙가류오’라는 단어는 ‘앙겔로스’ ‘천사’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어 “신속하게 일하는 존재, 자원해서 시중드는 존재‘를 의미하고 있다.

물론 억지로 십자가를 짊에 따라 얻는 은총도 있겠지만 십자가를 억지로 진다는 자체가 문제로 본다면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자기 스스로 기뻐서 신속하게 자원하여 진 십자가였기에 자기 아들인 알렉산더와 루포가 초대교회 감독이 되는 은혜를 입지 않았는가? 억지로 졌다면 그런 은혜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은 십자가의 처형을 맡은 총지휘관이다.(39) 백부장은 전쟁터에서 백 명이상의 적군을 죽여야만 얻는 직분이다. 또한 전쟁터에서 수많은 죽음을 봐왔던 자라 사람 하나 죽는 것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예수의 죽음 앞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장면은 너무나 큰 압권으로 봐야하지 않겠는가?

 

오늘날에 백부장은 칼(KAL)기를 폭파했던 김현희나 아니면 소련 공군조종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수백 번 이상 죽이지 않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보자. 손에 든 무기는 없었지만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 왔다. 그러니 성경에서 나타난 인물들이 나와 상관없는 존재로 여기기 때문에 성경을 읽어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처럼 방향만이라도 제대로 되어 있어야 한다.

세 번째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십자가상에 달렸던 강도다.(27) 강도는 어느 민족인지 알 수 없지만 강도라는 개념은 사람을 해하며 물건을 빼앗는 자로 여긴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강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기로 하여 교인들이 소유한 것을 빼앗는 존재를 의미한다. 즉 말씀을 칼로 비유하고 있는데 그 칼로 살려내지 못하고 죽이는 행위를 강도짓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하여 하나님의 소유를 갖고 있는 것을 생각만으로도 빼앗으려고 하는 행동을 하는 자가 강도라고 한다면 십자가상에 달려야 하는 존재 중에 목사가 제일 많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본인도 강도짓을 너무나 많이 했기에 너무나 실감이 나는 대목이다.

 

목사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거나 모범을 보이지 못했다면 장로나 권사, 집사, 교사 그리고 평신도까지도 다 강도가 될 수밖에 없다면 우리는 십자가에 달려야 하는 강도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십자가 신앙을 얻을 수 있다.

네 번째는 사람 취급도 못 받는 여자들이다.(40-41) 오히려 이방인들은 그래도 낫지만 여자들은 이방인보다 노예보다 더 못한 취급을 받았던 문화와 환경이었던 시절이다. 그런 여자들이 예수가 지고 가던 십자가의 길에 동행하였으며 함께 했던 부류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여자는 복음의 생명을 잉태하여 생산해 낼 수 있는 존재다.

따라서 십자가 주변에서 발견된 신앙인들은 제자들도 아니며 종교지도자들도 아니다. 오히려 사람 취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던 이방인들이었으며 여자들이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십자가 신앙을 지켰던 사람들의 신분은 천한 신분이었고 죄로 얼룩진 포악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우리가 그런 존재로 살아왔음을 깨달아야 하며 앞으로도 십자가를 자원해서 져야 하며 예수를 향하여 서야 하고 강도처럼 예수와 함께 낙원에 있기를 원해야 한다. 또한 복음의 생명을 잉태하여 널리 퍼뜨리는 존재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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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럼 필 자

이종남목사

570220lj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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