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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기 십일조가 창세기의 연관되어 있다면

여수룬1 2007. 11. 14. 14:12

말라기 십일조가 창세기의 연관되어 있다면

 

 

십일조에 대한 내용을 언급하면 할수록 무궁무진하다. 십일조의 단어 중 “십(10)”이란 단어의 의미는 여러 가지이지만 그 중에 완벽함, 질서의 완전함, 가득 참을 의미하고 있으며 증거를 불러오는 마법의 숫자의 뜻을 갖고 있다. 지난번 십일조에 대한 두 번째의 글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진리를 깨달아 복음을 전하는 상태의 숫자가 바로 “10(십, 열)이란 표현을 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수학의 10진법의 토대이며, 질서의 완벽함과 풍요로움의 가득 함을 의미하고 있다. 모든 의무를 기록한 십계명이나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이 10개의 절로 되어 있다. 또한 하나님의 요구 전체에 대한 십일조도 신앙의 온전한 인식으로 하나님 앞에 마땅한 바를 나타내는 것이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애급의 10 재앙도 하나님께서 그 땅을 다루시며 지배하시는 완벽함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짐승의 세계 권력은 10 나라의 연합에 기초하며 우상의 10개의 발가락(단 2:41), 짐승의 10개의 뿔(단 7:7, 20, 계 12:3, 13:1)을 상징한다. 이렇듯 마귀 사탄도 하나님의 완벽함, 완전함, 가득 찬 것을 너무나 완벽하게 흉내 내고 있음을 성경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시험을 받아 완전하게 된 것은 10개의 시험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주님의 비유(마 25:1~13)에서 열 처녀는 이스라엘의 전 민족을 가리키며 신앙인의 모습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 외 성경 여러 군데에서 열(10)에 대한 의미와 상징을 살펴볼 수 있다.

 

십일조에 대한 의미 분석을 언급하고 있는 내용으로 필자의 주장이나 사상을 펼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도를 분명히 알고 서로 나누자는 목적이다. 십일조라는 의미는 “교환하다”라는 단어가 연결되어 있는데 육적이며 짐승의 속성을 갖고 있는 내 마음의 토대를 갈아 엎어버리든지 아니면 마음의 토대를 아예 바꾸어 버리는, 즉 교환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우리의 육신은 내 겉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음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롬 7:18) 내 속의 상태가 육신적이고 짐승의 속성이 버티고 있는 한 변화는 꿈도 꾸지 말라. 이것을 교환하시고자 바꾸어주시려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신 것이다. 인간 마음의 토대가 교환되지 않거나 바뀌지 않으면 하나님의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올바르게 깨달아지면 내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뀌는 상태가 바로 창세기 1장에 언급하고 있는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는 사건이며 이것이 바로 십일조의 정신이며 하나님의 요구하심이 되는 것이다. 처음에 진리를 어설프게 깨닫다가 칠흑과 같은 깊은 밤에는 진리를 깊이 깨닫는 침묵의 상태로 전환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진리는 항상 빛을 향해서 전진하게 되어 있으며 진리를 깨닫게 된 사람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일을 하는 상태 즉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존재가 된다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 속 토대에 정착하여 뿌리를 내리게 되는 안식의 상태를 얻게 된다.이것이 바로 안식일의 정신이요 본질인 것이다. 이런 경험을 해보지 않고서 예배를 한다면 과연 그 예배를 누가 받을 것인가?

 

이때까지 내 것으로 된 것에서 하나님의 것으로 교환 또는 전환 바꿈의 경험이 없이 십일조를 거론한다면 다시 한 번 십일조에 대해서 고려해야 한다. 십일조는 내가 무엇을 하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짐승에서 사람으로, 죄인에서 의인으로, 종에서 왕의 신분으로 바꿔 놓는 것이 십일조임을 깨달았으면 한다.

 

애급에서 가나안 땅으로 건너간 상태(히브리민족이란 건너간 족속을 의미함, 나사로와 부자 사이에 건너가야만 하는 길목), 어둠에서 빛으로 바꿔진 상태, 사망에서 생명으로 전환된 상태, 저녁에서 아침으로 교환된 상태, 죽음에서 부활로 탈바꿈이 된 상태가 바로 십일조의 상태라고 한다면 과연 우리가 지금까지 십일조를 바치면서 얼마나 바꿔졌으며 탈바꿈이 되어 있는지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