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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기에서 뜻하는 십일조 의미 2

여수룬1 2007. 11. 14. 13:32

말라기에서 뜻하는 십일조 의미 2

 

 

지난 번 십일조에 대한 글을 올린 후 많은 분들의 관심과 질문이 쇄도했다. 구약시대 십일조가 끝났기 때문에 신약시대에 언급되지 않은 십일조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을 펼치는 분들이 있었다.

 

십일조에 대한 약속이 구약성경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구약 시대에만 머무르는 것이 결코 아니다. 신약시대에 언급되지 않았다고 십일조에 대한 사상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알아야 한다. 지금도 살아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십일조에 대한 찬반양론에 끼어들지 않았으면 한다.

구약시대는 성전관리를 위한 부분과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생활을 위한 부분과 고아와 과부 그리고 나그네들을 위한 구제 부분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십일조가 아니라 십의 삼조를 했다. 아마 십의 삼조를 하라면 몇 명이 할 수 있을까?

 

십일조든 십의 삼조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십일조는 내가 열심히 일하여 나의 소유가 된 것에서 십분의 일을 떼어 하나님께 바치는 헌금으로 여긴다면 십일조의 정신이 아니다.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 십 분의 구는 내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십일조는 아무리 바쳐도 소용없는 것이다.

 

십일조의 정신은 내가 열심히 일한 대가에서 하나님 것과 내 것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것이지만 일할 수 있도록 건강을 주시고 시간을 주시며 재능을 주신 것 모두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 속에 바치는 것이다.

헌금이나 십일조는 내 것을 내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고 입증하는 차원에서 하나님 앞에 바치는 것이 헌금의 기본 정신이 아닐까?

 

찬송가 71장처럼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칠 수 있는 분이 몇 분이나 되겠나? 아마 이 글을 쓰는 본인도 아주 힘들 것 같다. 마태복음 19장에 등장하는 부자 청년에게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고 하신 말씀대로 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 소유에 대한 언급을 한 바가 있는데 시편 119:56 “네 소유는 이것이니 주의 법도를 지킨 이것이니이다.”라는 말씀은 내가 지키며 살아온 하나님의 말씀을 그런 말씀의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지키게 하며 깨닫게 하는 차원에서 나누어 주라는 의미심장한 말씀이다.

 

따라서 헌금이나 십일조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입장에서 보면 돈이 반드시 있어야만 전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복음을 전하게 되면 필요한 재정을 음으로 양으로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신비로움을 경험할 것이다.

 

십일조는 주님과 내가 한 몸이 된 것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바치는 것이다. 내가 일한 것에 십분의 일을 바치는 것인데 아주 세밀한 계산으로 십 분의 일을 잘라내는 것을 이제 버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십 분의 일 이상 내었다고 자랑도 하지 말라.

 

너무나 계산적으로 하면 하나님도 계산적으로 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십일조를 너무 정확하게 내는 것은 묵살할 수 없지만 아무렇게 대충 그리고 엉큼하게 챙기고 난 뒤 내는 것은 고려해야 한다.

 

내가 주님과 함께 죽어 삼일 동안 장사지냈다면 내 것이 어디 있는가? 내 것이 있을 수 없다. 주님의 것을 받은 우리가 주님의 것을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내 것이 얼마나 가치 있고 바칠 만한 것이 있는가? 눈 먼 것, 저는 것을 바치는 이스라엘 백성들 보다 더 나쁜 예물을 바치고 있음을 성찰해야 한다.

 

누가복음 7장 3절에 “옥합을 가지고 와서”라는 구문을 헬라어 원문에 보면 ‘코미조’라는 단어가 ‘가지고’라는 뜻이 아니라 주님께로부터“되돌려 받다”라는 단어인데 ‘자신의 옥합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갖고 계시는 옥합을 되돌려 받기 위해서’ 나오는 장면이다.

이렇게 성경에서도 부여하는 의미를 관찰해 본다면 주님께서 내게 모든 것을 주셨기 때문에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칠 수 있는 것이다. 내 것이라면 아까워서 바칠 수 없는데 주님께서 내게 주셨기 때문에 아낌없이 바치는 것이다.

 

로마서 8:32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는 말씀을 다시 한 번 묵상해보라.

 

우리가 모든 것을 받았지만 다 내놓으라고 하시지 않으신다. 일부만이라도 내 놓으라고 하신 십일조가 주님 앞에서 “저에게 주신 모든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것입니다.” 라는 고백 아래 바치라는 뜻이다. 각종 헌금도 마찬가지로 “이 모든 것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셨기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라는 신앙의 모습 속에 바치는 것이다.

이제 정성을 다해 드리는 각종 헌금이나 십일조는 내 것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모든 것이 내게 있음을 감사하며 바치는 삶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