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글모음/창골산 칼럼

예수님께서 지셨던 십자가를 ...

여수룬1 2007. 11. 23. 16:51

 


 

억지로 십자가를 져야 하는가? 스스로 져야 하는가의 글을 보신 분들의 댓글을 보고 다시 글을 쓴다. 그 이유는 이미 과거에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내가 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을 볼 때 너무나 한심하다.

 

아니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완전하게 완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 땅에 다수의 신앙인들이 과거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내가 지겠다고 다짐하고 결단하며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또 다시 질 필요가 전혀 없음을 모르는가?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완벽함 작품으로 끝나 막이 내렸는데도 아직도 미완성으로 여긴다면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아래 이뤄진 사건을 아직도 내가 해야 하는 부분이 필요한가? 나무 십자가를 붙들고 전국을 순회하는 모습 속에서 얼마나 웃기는지, 십자가가 무거워서 아니면 힘들어서 십자가가 땅에 닿는 부분에다 바퀴를 달고 가는 모습이 가관이다. 진짜로 주님의 지신 십자가를 질 것이라면 바퀴를 왜 다는가?

 

이들을 비웃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다시 내가 짐으로 주님의 고난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묵상하며 회개하는 것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거룩한 모습이고 은혜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런 점에서 왈가왈부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이미 다 지신 십자가를 또 다시 져야 할 십자가는 우리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16:24에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는 말씀 가운데 좇으라는 “아콜루데오”라는 단어는 “아(연합)”단어와 “켈류오도스(길)”의 합성어로 함께 같은 길에 있다는 의미로 주님과 내가 연합된 상태에서, 즉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내가 함께 같은 길을 가는 상태를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로 볼 때 과연 우리가 아직도 져야 할 나무 십자가가 필요한 것인가? 그런 나무 십자가가 아니더라도 또 다른 십자가를 져야만 하는지........ 이제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는 시편 23편에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주시는 그 안에서 마음껏 풀을 뜯고 주님과 함께 동행 하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닌가?

 

주님과 함께 한 몸이 되어 고백하고 감사하며 찬송하는 것, 함께 기도하며 예배하고 영광 돌리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까지의 과정을 기억하며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이 십자가를 지게 하도록 하는 목적인가? 과연 주님께서 그런 십자가를 당부하시는지 다시 한 번 고찰해야 되지 않을까 한다.

 

십자가를 지지 말자는 무용론이 결코 아니다. 다만 이미 완벽하게 지신 주님의 십자가를 져서도 안 되며 자신의 업보나 팔자를 통과하기 위한 수단이나 목적으로 져서는 안 된다. 자신을 부인한다는 의미는 자신은 온데간데없는 존재로 이미 죽은 우리가 내가 져야 할 십자가가 없다는 것이다. 아니 전혀 필요 없는데도 아직도 무엇이 미련이 남아 십자가를 지려고 하는지 알 수 노릇이다.

 

이미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우리가 부활의 옷을 입은 우리가 또 다시 되돌아가서 십자가를 져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나’라는 존재가 없어졌는데 내가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계속 고집을 피워야 하는가? 고난주간이나 수련회 때 아니면 문화 행사를 위해 십자가를 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외에 다른 일반적인 생활 속에서 매일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져야 하는 신앙생활을 어떻게 영위해야만 하나? 주님과 함께 정해진 목표를 향해 같은 길에 서서 걸어가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주님과 함께 강력한 감동을 받는 그 순간이 바로 고난이다.

 

이미 채찍질을 다 맞으셨기 때문에 우리의 병이 치료되고 있으며(벧전 2:24)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그 십자가 위에서 나와 함께 죽으시고 삼일동안 함께 장사되었다가 부활의 옷을 입혀 새로운 생명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살리시는 영으로 살아가는 그 자체가 바로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