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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장군 김유신은 [삼한(三韓)의 통일]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수룬1 2007. 11. 23. 17:00

 

문무왕 13년에 신라장군 김유신이 79세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그 때의 일이 삼국사기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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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디지털 한국학 http://www.koreandb.net/koreandb_services.asp?URL=/Sam/SamInfo.htm

 

삼국사기 권제43 (열전 제3)  김유신/79세

 

왕이 눈물을 흘리며 물었다.
“과인에게 경이 있음은 고기에게 물이 있음과 같은 일이다.

만일 피하지 못할 일이 생긴다면 백성들을 어떻게 하며, 사직을 어떻게 하여야 좋을까?” 유신이 대답하였다.
“신이 어리석고 못났으나 어찌 국가에 유익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다행히도 밝으신 성상께서, 등용하여 의심치 아니하시고, 일을 맡김에 의심치 않으셨기 때문에 대왕의 밝으신 덕에 매달려 조그마한 공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지금 삼한(三韓)이 한 집안이 되고, 백성이 두 마음을 가지지 아니하니, 비록 태평에는 이르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저으기 편안하여졌다고 하겠습니다.

신이 보면 예로부터 대통(大統)을 잇는 임금이 처음에는 정치를 잘 하지 않는 이가 없지 않지만 끝까지 잘 마치는 이는 드물었습니다[靡不有初 鮮克有終].

그래서 여러 대의 공적이 하루 아침에 무너져 없어지니 매우 통탄할 일입니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성공이 쉽지 않음을 아시고, 수성(守成)이 또한 어려움을 생각하시어, 소인을 멀리하고 군자를 가까이 하시어, 위에서는 조정이 화목하고 아래에서는 백성과 만물이 편안하여 화란이 일어나지 않고 국가의 기반이 무궁하게 된다면 신은 죽어도 유감이 없겠습니다.”
왕이 울면서 이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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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이 삼국사기에 보면  

신라장군 김유신은 자신의 평생 제1의 공을 [삼한(三韓)이 다시 한 집안이 된 것(三韓爲一家)]을 들고 있다.

당시에는 이미 [고구려 백제 신라]라는 국호를 쓴지가 수백년이 되었는데도 신라장군 김유신은 [삼한(三韓)의 통일]을 이야기하고 있다.

당시 신라가 비록 고구려의 옛땅을 모두 차지하지는 못하였지만 일부 고구려땅을 차지하고 많은 고구려 유민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신라장군 김유신은 [고구려 백제 신라]를 모두 통일했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신라는 후에 스스로를 고려(고구려)라 불렀던 발해의 유민들을 받아들여서 진정한 삼국통일을 이루게 된다.

 [ 발해는 스스로를 고려(고구려)라 불렀다.] <- 관련글

 

신라장군 김유신의 [삼한(三韓)의 통일]이라는 표현은 [삼한(三韓)] 즉 [고구려 백제 신라]가 원래 한민족이었다는 것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는 표현.

그는 [고구려 백제를 합병했다]는 표현을 쓰지 않고 [삼한(三韓)의 통일]을 했다고 표현하고 있다.

마치 남한과 북한이 서로를 합병하겠다고 하지 않고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고구려 백제 신라는 지금의 남북한처럼 원래 한민족이라는 의미.

 

그래서 [고구려 백제 신라]라는 국호를 쓴지가 이미 수백년이 지난 당시에도 [삼한(三韓)]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

 

중국 고대기록에도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같은 말을 썼다.

 

부여,고구려,백제,신라, 옥저, 예(濊) 모두 같은 말 썼다. <- 관련글

 

[삼한(三韓)] 즉 [마한 진한 변한]이라는 국호를 안쓰게 된지 수백년이 지나서도 [삼한(三韓)의 통일]을 이야기 한다는 것그만큼 [삼한(三韓)은 한뿌리다.]는 의식이 강했다는 것이고  한반도와 만주가 원래 같은 한민족의 영역임을 증거해주는 하나의 예라 하겠다.

 

마한 진한 변한  <-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