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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3편 속에 숨어 있는 내용

여수룬1 2007. 10. 10. 15:26
시편 23편 속에 숨어 있는 내용
  
시편 23편은 결혼식, 생일날, 개업식, 심지어 장례식에도 본문으로 채택하여 설교할 수 있는 귀중한 시편이다. 이 내용의 시편이 불신자들이나 타 종교인들에게도 읽히는 귀한 시다.

성경공부를 가르치는데 시편 23편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주신다는 말씀이 어떤 여전도사님은 학교에서 주는 상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왜 양에게 밥상을 차려 줘야만 하는지 본인도 모른 채 목회를 해왔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귀중한 뜻이었는지 8년 전에 알았다. 밥상이 네모진 것만은 아니지만 네모지다고 가상하고 생각하자.
 
여기서 그림을 만들 수 없지만 아주 쉽게 이미지를 생각해 보자. 오른 쪽에는 목자의 지팡이를 꽂아 놓거나 눕혀 놓는다. 그리고 왼쪽에는 목자의 막대기를 꽂아 놓거나 눕혀 놓는다. 제일 위 상단에는 목자의 겉옷을 펼쳐 놓는다. 제일 밑 하단에는 목자가 눕는다.

그 안에서 마음껏 풀을 뜯게 하는 모양이 양들에게 채려주는 밥상이다. 양들이 목자의 지팡이나 막대기 겉옷의 냄새를 맡고 그 이상 넘어가지 않는다. 만약에  넘어가는 그 순간 목자는 돌팔매질로 양들이 넘어가지 못하도록 한다. 양들이 식사할 때 주위 깊게 관찰하기 위한 형태다.
 
이러한 형태로 목자들이 양들에게 베풀어주는 최고의 밥상이다. 어떤 가축에게 밥상을 양들처럼 차려주지 않을 것이다. 양들이 그 테두리 안에 들어가서 풀을 듣고 있을 때 즉 우리가 그 안에서 말씀을 먹고 있을 때 우리가 누리는 영적 축복이다. 이것이 시편 1편에 나오는 “아쉬레”라는 복의 개념이다. 즉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울타리 안에서 마음껏 활동하며 누비고 다니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복이란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밥상에서 등장하는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가? 바로 십자가다. 시편 23편에서 십자가의 은혜가 나올 줄 몰랐다. 그것을 증명하는 구절이 여러 구절이 있지만 에스겔 37장 15-23까지 바탕으로 그리고 스가랴 11장 7절을 기초로 살펴본다면 하나가 되는 사건이 십자가 사건이다. “죽은 나무인 나”와 “살아있는 나무인 예수그리스도”가 하나가 되는 사건이 바로 십자가 사건이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형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와 주님이 하나가 되는 사건이다. 십자가는 처절한 고통을 생각하는 계기도 되겠지만 하나님과 나 사이에 갈라진 것을 연결해 주는 장소요, 주님과 한 몸이 되는 순간, 연합되어 살아갈 수 있는 첫 걸음이 시작되는 곳이다.
 
요한 계시록 11장 8절을 읽어 보라. 십자가 죽음의 장소가 또 다른 곳이 있다는 것을 아시면 놀라실 것이다. 이때까지 갈보리와 골고다만 알았던 십자가의 처형 지명이었는데 애급과 소돔이라는 장소가 우리들에게 무엇을 시사하는지 아는가?
 
이사야 31장 3절에 애급은 사람이요. 즉 사람들 속에서 십자가의 죽음을 맞이하신 것이다. 물론 역사적인 장소인 골고다와 갈보리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건이 내 안에서 이루어져야 만이 십자가의 구속의 은총을 깊이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더욱 강조한다면 내 안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이다. 이 사실을 아는 순간 내 안에서 음성이 들려 와야 한다. 예수님께서 운명하시기 직전에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도다" 이 음성을 듣지 못하셨다면 아직 고난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고난이라는 단어는 주님과 함께 강한 체험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에 힘들게 살아가거나 아니면 신앙 생활하면서 고통을 감래 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신앙 생활하면서 귀한 비밀을 깨닫는 신비로움을 갖는 것도 고난 속에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고난이라면 마다하지 말자!
 
이 사실을 여러 사람에게 증거하면서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하는 간증이 “목사님!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역사적인 사실을 믿어 오면서 피부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목사님 말씀처럼 예수님이 내 안에서 나와 함께 죽으심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고 고백했다.
 
밥상을 차려주시는 하나님! 그 분이 내 안에 살아 숨 쉬고 있다.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신앙의 기초다. 그것이 우리가 누려야 하는 영적인 복, 히브리어로 "아쉬레"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테두리 안에서 마음껏 활보하고 다니는 것을 “아쉬레”의 의미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누리시길 바란다.
 
밥상 안에 몰아넣고 가만히 계시는 분이 아니다. 그 안에 있어야 되는 양들이 고집과 자만심 때문에 그 테두리를 벗어나고자 한다. 그런 기미가 보이면 목자는 물맷돌로 던져 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왜 그 테두리를 벗어나면 원수가 눈독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푸른 초장에 누이시는 그 분과 더불어 동반자가 되는 은총이 여러분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