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글모음/창골산 칼럼

선교의 핵심이 용서라는 의미

여수룬1 2007. 9. 18. 13:15

선교의 핵심이 용서라는 의미

 

성경의 오역을 가져다 준 분들로 인해 신앙의 혼란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을 정죄하거나 잘못됨을 비난하지 말자.

우리들도 그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없다면 성경이 지금에까지 전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시편 8장 5절에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라고 번역되어졌는데 원어에는 "천사"가 아니라 "하나님"(엘로힘)으로 되어 있다.

우리 성경이 영어성경 흠정역 판을 그대로 번역했기 때문에 우리도 똑같이 오역을 했다.

 성경에 나오는 땅이라는 단어는 여러 종류로 다양하게 나와 있는데 번역하는 형태로 볼 때 일관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본래 갖고 있는 의미에서 벗어나 번역되어 지고 있다.

그 외 여러 단어나 문장에서 이런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에서 구원과 천국의 소망이 은혜롭게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용서라는 대한 단어에서 각기 다른 뜻을 가진 용서를 따라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서로 용서하며 살자는 의도에서 피력하고 싶다.

 


1. 시편 78편 38절에 나오는 "코팔"이라는 용서는 "덮는다"(to cover)는 뜻으로 우리의 더럽고 추한 허물과 죄를 덮어버리는 의미에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피로써 우리 죄를 용서하시되 그리스도의 의로 덮어서 깨끗하게 해 주신다는 말이다. 마치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고 있는 노아에게 두 아들이 덮을 것을 가지고 아버지의 추한 모습을 보지 않으려고 뒷걸음질해서 덮어주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2. 시 25편 18절에 "나사"라는 용서는 "들어서 없애버린다"(to lift up or away)는 뜻으로 우리들의 악하고 추한 것을 들어서 없애버린다는 의미로 마치 냄새나는 물질을 치워버리는 것과 같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 보다 더 더러운 것은 우리들의 마음이다.(예레미야 17:9, 마태복음 15:19)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속에 담겨 있는 각종 오물들을 그 자취도 없이 치워버려 주시고 생각이 나지 않게 하신다. 너무나 놀라운 은총이다.

 3. 레위기 16장 10절에 "샬라크"라는 용서는 "보낸다"(send away)라는 뜻으로 아사셀 양에게 죄를 전가시켜 광야로 보냄과 같이 아주 멀리 우리 죄를 보내버리는 은총을 말한다. 신약에서 주기도문에 나오는 "용서"(빚을 탕감하다)는 “아피에이미”라는 단어가 동일한 해석이다. 선교라는 단어가 이런 단어에 의해 파생되었다는 사실에 더욱 감사하다.

 선교의 핵심이 용서라는 의미를 부각시키지 않으면 진정한 선교의 가치가 흐리게 된다.

주님의 구원의 은총으로 인해 용서받는 은혜를 반드시 전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해 줬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용서하는 법칙을 가르쳐 줘야 한다.

용서를 가장 잘 전할 수 있는 사람을 선교사로 보내야 한다.

4. 누가복음 7장 43절에 "카리조마이"라는 용서는 값없이 주다, 은혜를 베풀다, 탕감하다는 뜻으로 반드시 갚아야 하는 빚을 아예 갚지 않도록 없애 버리는 것이다. 이런 빚진 자가 된 분을 선교사로 보내야 한다. 꼭 멀리 보내야만 선교사가 아니다.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는 광야와 같은 영혼들에게 보내져야 한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엄청난 빚을 진자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선교의 핵심이 용서다. 복음의 핵심도 용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주기도문의 정신이 바로 용서다. 주기도문이 끝나는 그 다음 구절을 보라. (마태복음 6:14, 15)

 

우리들은 용서할게 많다.

먼저 나 자신부터 용납되지 않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우리들을 용납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외면하지 말자.

나를 죽이고 싶도록 미워하는 그것을 용서해야 한다.

 주위의 사람들을 용서하자.

나를 기분 나쁘게 한 그 사람부터 용서하자.

그리고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에까지 이르러 용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