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글모음/창골산 칼럼

핑계 대지 않는 튤립과 수선화

여수룬1 2007. 4. 20. 12:12
핑계 대지 않는 튤립과 수선화  

이른 아침 된서리가 내리는 날에 사람은 아무도 봄을 느끼지 못하는데, 
수선화는 땅속에서도 봄바람을 느끼는지 푸른 잎을 뾰족뾰족 내밉니다. 
아무 것도 없던 곳에 다소곳이 솟아오른 푸른 잎을 보면서 '이제 봄 맞을 준비를 해도 되겠구나' 생각합니다. 
 
교회 마당에도 해마다 수선화가 핍니다. 
다른 꽃보다 먼저 잎을 피우고 꽃을 피우기에 더 반갑고 살가운 눈길을 보내곤 합니다. 
 
수선화를 줄지어 심어둔 곳은 교회 지붕을 따라 연결되어 있는 빗물받이 홈통 아래입니다. 
빗물이 내려가는 곳이 따로 있건만 홈통의 가운데 부분이 낡아 녹이 슬자 약하고 느슨해진 부분으로 빗물이 고여 떨어졌습니다. 
수선화가 있는 자리는 빗물이 떨어지는 자리보다 조금 더 안쪽이라 별 피해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비가 올 때마다 같은 자리에 계속해서 빗물이 떨어지다 보니 어느새 흙이 패이기 시작했고 조금씩 경계선이 무너지나 싶더니 이내 수선화 알뿌리가 밖으로 나올 정도가 되었습니다.
  
 
위험해 보인다 싶어 꽃봉오리가 올라오기 전에 안전한 곳으로 옮겨 주었습니다. 
그런데 미처 옮기지 못한 알뿌리 하나가 빗물에 씻겨 내려갔는지 원래의 자리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알뿌리는 바깥에 그대로 나와 있고 실뿌리는 겨우겨우 흙을 붙잡고 있는데 줄기는 휘어지고 비틀어져 어떻게든 햇빛을 받아보겠다는 자세였습니다. 
그런 자세에서 꽃봉오리를 올리고 노란 꽃잎을 터뜨릴 채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 기적처럼 보였습니다. 
불편하고 힘겨운 그 모습에 마음이 아릴 정도여서 얼른 다른 곳으로 옮겨 주었습니다.
 
비슷한 일이 한 번 더 있었습니다. 
아침에 출근을 하다가 대문 밖에서 이상한 잎을 발견하였습니다. 
감자와 고구마 썩은 것을 내다버리는 곳에 낯선 잎이 줄지어 피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흔하게 보는 잡풀도 아니요 그렇다고 야생화 잎도 아닌 것 같은데, 넓고도 짙푸른 잎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고 그만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튤립이었습니다.
작년 봄 화분에 심었던 튤립의 알뿌리를 캐내어 말리느라고 윗채 마루에 펼쳐놓았습니다. 
거두어들인다 하면서도 미루기만 하였는데 어느 날 남편이 흔적도 없이 치워버렸습니다. 
알뿌리가 부실해서 이듬해에 꽃을 피울 것 같지 않았다고 합니다. 
틀린 말도 아니다 싶어 되찾을 생각을 안했고 튤립에 대해서는 까마득히 잊어버렸습니다. 
 
 
 
그렇게 가을이 가고 겨울이 가고 올 봄이 되었으니, 비도 숱하게 맞았을 것이고 눈과 서리에도 파묻혔을 것이며 꽁꽁 얼기도 하였을 것인데…. 
찬찬히 살펴보니 줄기 속에 봉긋한 꽃봉오리까지 숨어 있었습니다. 
놀라움과 기쁨의 감탄이 한꺼번에 튀어나왔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핑계대지 아니하고 제 할 일을 해낸 수선화와 튤립을 보게 된 일이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부활절을 맞이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이 꽃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잊어버릴 수 없는 비유를 나의 마음속에 심어 주셨습니다.
 
고난주간은 특별 새벽기도 기간이었습니다. 평소에 이유가 있어 새벽기도에 못 나온 성도들도 꼭 나와서 부활절을 기도로 준비하자고 목사님은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핑계부터 찾았습니다. 
새벽 기도 갈 시간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엄마를 찾는 둘째 녀석이 첫 번째 핑계요, 직장을 다녀 피곤하다는 것이 두 번째 핑계였습니다. 
 
그리고 내 사정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면 그만한 것은 다 이해를 해주시리라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 것이 세 번째 핑계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으로는 하나님한테 벌을 받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상처가 나지 않을까, 아픈 데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지 못한 어떤 사건이 터지지 않을까 하며 미리 하나님의 징계를 예상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고난 주간에는 아무런 사고도 사건도 없었습니다. 
하다못해 남편과 작은 말다툼조차 없었습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주님이 택하신 방법은 징계가 아님을, 수선화와 튤립을 통한 비유임을…. 
 
"어려운 것 잘 안다. 그러나 핑계대지 아니하고 그 어려움 가운데서도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더라면 내가 얼마나 기뻤을 것이냐? 
네가 수선화와 튤립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 심었을진대 나는 어떠하였겠느냐?" 
 
성경에 나오는 많은 비유들이 묵상을 거듭할수록 참 절묘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번에 주님이 나에게 주신 비유도 그러합니다. 
해마다 고난주간은 있을 것이요 수선화와 튤립도 꽃봉오리를 피워 올릴 것인데, 내가 그것들을 볼 때마다 올해 주님이 주신 비유를 어찌 잊어버릴 수 있겠습니까? 
아니 고난주간이 아니더라도 잡지에서든 TV에서든 수선화와 튤립 사진을 볼 때 주님의 음성이 어찌 기억나지 않겠습니까? 
 
 
실수와 실패의 순간에도 찾아오셔서 잘못을 깨닫게 하시되 징계치 아니하시고 
지혜를 주사 다시 일으키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