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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온 편지

여수룬1 2007. 4. 17. 12:56
  시드니에서 온 편지
 
   ‘아! 소꼬리’, ‘아! 지옥’ 할 때는 이미 늦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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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 사랑하는 아내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아내가 한국에 다니러 간 사이 나는 아이들에게 맛있는 ‘소꼬리찜’을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정육점에 둘러 소꼬리를 사고 있는데 옆에 있던 아이가 “아빠도 소꼬리를 할 줄 알아요? 오늘 저녁은 맛있게 먹겠네요”라고 말하며 좋아 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사 온 고기를 부엌에 펼쳐 놓고 소꼬리와 대면하고 보니 참으로 막막했습니다. 고기를 사오기는 사왔는데, 아이들에게 큰 소리 치기는 쳤는데 막상 요리를 하려고 하니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성도들에게 전화해서 “소꼬리찜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세요”라고 물어 본다는 것은 좀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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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참을 궁리하다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요리 책을 뒤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소꼬리찜’ 하는 방법은 아무리 찾아봐도 나와 있지 않고 ‘갈비찜’ 하는 방법만 나와 있었습니다. 나는 ‘갈비찜’ 요리하는 순서를 보면서 ‘소꼬리찜’ 만드는 방법을 나름대로 설정해 가며 거창한 작전(?)까지 세웠습니다. 먼저 사온 고기를 물에 담가서 핏물을 뺐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맛있는 요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책에 나온 양념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그리고 정확한 정량을 맞추면서까지 만반의 준비를 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아이들에게 맛있는 소꼬리 찜을 해 주어서 가족들에게 좋은 아빠, 자상한 아빠라는 칭찬을 듣는 일 만 남았습니다.


  핏물을 뺀 고기를 불 위에 올려놓고 끓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맛있는 찜을 만들려면 약 불에 오랫동안 끓여야 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나서 가스를 약하게 하고 뒷방 서재로 갔습니다. 서재에서 한참 동안을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는데 막내 아이가 서재로 “아빠, 불났어요”라고 소리치며 달려 왔습니다. 나는 갑자기 웬 불이지 라고 생각하며 뒤채에서 안채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문을 열자 집 안에는 연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제야 나는 불 위에 소꼬리를 올려놓았다는 것을 깨닫고 ‘아! 소꼬리’하고 외치며 부엌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이미 물은 다 졸아 들었고, 소꼬리는 새카맣게 탔습니다. 온 집안은 탁한 연기와 타는 냄새로 가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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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저녁 맛있는 식사를 생각한 아이들은 라면으로 때워야했고 사랑 받는 아빠를 생각한 나는 문제 있는 아빠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밥상에 둘러 앉아 맛있는 소꼬리 찜을 먹는 행복한 모습이 아니라 냄비에 눌러 붙은 새까맣게 탄 소꼬리를 숟가락으로 뻑뻑 긁고 있는 처량한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건망증은 유독 나만의 일은 아닐 것입니다. 불에 무엇인가를 올려놓았다가 그만 태워버려 ‘젊은 애가 왜 이렇게 건망증이 심하냐’고 시어머니께 꾸중 듣는 경우, 물건을 사놓고 물건은 두고 돈만 내고 나오다 ‘아줌마, 물건 갖고 가야지요’라는 말을 듣고 얼굴 빨개진 경우, 어딜 가다가 그만 가는 곳을 잊어버리고 지나친 후에야 아내에게 ‘도대체 정신을 어디에 두고 사느냐’고 핀잔을 듣는 경우, 옷 위에 다리미를 올려놓고 전화로 수다 떨다 그만 옷에 다리미 자국을 남겨 놓고 ‘당신, 살림하는 여자 맞아’하고 야단을 맞는 경우 등 아마 수도 없이 많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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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령 그런 것들은 잊어 버려도 조금 손해 보고, 야단 한 번 맞고, 조금 창피 당하면 됩니다. 그런데 절대로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을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그 분을 잊어 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 분을 잊어버리면 조금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손해 보게 됩니다. 그 분을 잊어버리면 야단 한 번 맞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야단 때문에 천국과 지옥으로 갈리게 됩니다. 그 분을 잊어버리면 조금 창피 당하는 것이 아니라 지옥 불에서 영원한 창피를 당합니다. 


  ‘아! 소꼬리’할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아! 지옥’ 할 때는 이미 늦습니다. 마치 부자가 지옥에 가서 아브라함과 나사로를 보고 ‘아! 지옥’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눅16:23-24)

  자료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