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글모음/창골산 칼럼

위대한 삶의 메세지는 깊은 상처에서 나온다

여수룬1 2006. 10. 19. 22:12

  가장 위대한 삶의 메시지는 가장 깊은 상처에서 나온다.   
 

자신의 불안전함을 인정하라.
모두 갖추고 있는 체하지 말고 스스로에 대해 솔직해지라.
부인하거나 핑계 대는 대신에,
자신의 약점을 발견하는 시간을 가지라.
 
우리의 가장 위대한 삶의 메시지와 가장 효과적인 사역은..
우리의 가장 깊은 상처에서 나온다.
 
기드온의 약점은 낮은 자존감과 뿌리 깊은 불안감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큰 용사'로 바꾸어 놓으셨다.
아브라함의 약점은 두려움이었다.
두 번이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아내를 동생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는 모든 자의 조상'으로 바꾸셨다.
충동적이고 의지가 약한 베드로는 '반석'이 되었고,
간통했던 다윗은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거만한 '천둥의 아들'가운데 하나였던 요한은 '사랑의 사도'가 되었다.
 
- "목적이 이끄는 삶" (Day 35) 中에서.. 
 

 

  인생의 중요한 세가지 
 
 
 
다스려야 할 세 가지
성질, 혀, 행위

 
가져야 할 세 가지
 용기, 애정, 관대함

 

주어야 할 세 가지
필요한 이게게 도움,
슬퍼하는 이에게 위안,
가치있는 이에게 올바른 평가

 

 사랑해야 할 세 가지
현명한 사람,
덕있는 사람,
순진한 사람

 

 칭찬해야 할 세 가지 :
검소함, 부지런함, 신속함

 

 얻어야 할 세 가지
마음의 선량함,
목적의 달성,
명랑함奉 
  

  버려야 할 말 10가지

 

1. 일 더한다고 봉급 더 주냐? (무사안일주의)

2. 대충대충 하지 뭐, (적당 주의)

3. 딴 사람은 어떻게 하지? (소신 부족)

4. 설마 무슨 일 있을라고 (주인의식 결여)

5.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권위주의)

6. 똑똑한 사람이 워낙 많아서 (냉소주의)

7. 출세하려면 줄을 잘 서야지(기회주의)

8. 이건 우리가 할 일이 아니야. (책임회피)

9. 규정이 그렇게 돼 있는데 (형식주의)

10. 우리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패배주의)

유근호 <건강100계명>중에서奉 

  용서의 진실

"용서는 망각이 아니다. 용서는 포기하는 것도 아니다. 용서는 회피하는 것도 아니다." 스탠포드 대학의 교수인 프레드 러스킨이 그의 책 ‘용서’에서 한 말이다.


이민 사회는 ‘상처’와 ‘고통’이라는 단어로 얼룩진 사회라고 말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어느 모임에 가도 그리고 어떤 집단에 가도, 어느 사람을 만나도 이 말은 공통적으로 나온다. 그렇기에 ‘용서’는 너무 아름다운 단어로 다가온다. 용서하고 싶다. 사랑하고 싶다. 끊임없이 잘못을 끌어안고 싶다. 용서를 보고 싶고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나만의 마음일까!


어떤 사람이 한 말이 생각이 난다. “일 년만 지나면 욕하던 사람들도 더 이상 욕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잘못했다고 해도 그 기억은 일 년을 가지 않기 때문이지요” 과연 잘못의 유효기간이 일 년 밖에 되지 않을까! 사람들의 기억에서 망각되어진 것을 용서받은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한 때 잘못된 것을 가지고 입에 거품을 품던 사람들이 어느 사이 모든 것을 용서한 듯 체념한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면 이상한 생각이 든다. 그들이 잊을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다는 일을 용서해 버린 것일까! 혹시 귀찮고 지쳐서 포기한 것은 아닐까! 그것은 포기이지 용서는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자신의 잘못을 용서받기 위해서 입으로 죄에 대한 고백을 한다. 그들이 용서받기 위하여 회개하는데 사용하는 성경구절은 요한 일서 1장 9절의 말씀이다. 요한 사도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한일서1장9절, 개역 개정판) 진정 이 말씀대로 회개했을까? 그렇다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그러나 문제는 이 말씀을 가지고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도 다시 쉽게 같은 죄를 반복하는 데 있다. 이런 경우, 이 말씀은 회개의 구절이 아닌 자신의 만족을 이루는 도구로 전락되고 만 것이다. 회개는 입으로 고백한 죄를 다시 행하지 않는 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하겠지만 ‘만에 하나’ 죄를 지을 경우 가슴아파하고, 고통 가운데 지내다가 회개의 상대가 망각과 포기가 아닌 용서해 줄 때 진정한 자백이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라고 말씀하셨다. 용서해야 할 사람의 자세를 말해준다. 상대의 오른편 뺨을 치려면 손등으로 때려야만 가능하다. 예수님 시대에 손등으로 상대를 때리는 것은 인간이하의 모욕을 하는 것으로,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행동이다. 이런 사람에게 반응하지 않고 오히려 또 다른 편도 내어주라는 말씀을 하신다. 여기에 더 나아가 그를 위해 기도해 주라고까지 하신다.


오늘 나는 나의 어줍잖은 위선 때문에 상처를 받고 고통하는 여인에게, 그리고 상처를 받고 아파하는 친구에게, 또 절망의 나락에 빠져 헤메는 사랑하는 형제들에게 망각과 포기와 회피가 아닌 “예수의 용서”를 받고 싶다. 그리고 다시 당신들 앞에 서고 싶다. 용서 받고 용서하는 ‘용서의 진실’이 교차되기를 간절히 소원해 본다.

 김익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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