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글모음/창골산 칼럼

장성한 믿음을 가지려면

여수룬1 2008. 1. 8. 15:18
장성한 믿음을 가지려면

 

 

예수 믿는 성도라면 어떻게 하면 믿음이 좋아질 것인가? 하며 소원하고 있다. 예수를 잘 믿기를 원한다. 또한 예수를 열심히 믿어 천국에도 가고 상급을 받는 길이라면 어떤 상황이라도 극복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그러면 장성한 믿음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헬라어로 먼저 살펴보면 2244 h`liki,a(헬리키아) 2245와 동의어에서 유래된 단어로서 “성숙, 나이, 키, 성장, 장성”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런데 동의어인 2245 h`li,ko/j(헬리코스)는 h`li,,x(헬릭스)에서 유래된 단어로서 “동료, 동년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래서 헬리코스(h`li,ko/j)라는 단어는 감탄조로 “얼마나 많이, 매우 거대한, 어떻게 큰, ~만큼”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장성했다는 뜻이 무엇일까? 그것을 아주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는 구절이 있다. 에베소서 4장 13절에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는 것이 장성해진다”는 것이다. 즉 주님과 하나가 되는 차원, 동료가 되는 것, 동년배로서 같은 입장과 같은 심정으로 살아가는 것이 장성한 믿을을 말한다. 그래야만 매우 거대한 삶을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

 

5046 te,leio,j 텔레이오스 단어는 5056 te,loj 텔로스 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단어로 “완전한, 온전한, 성년의, 노동”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런데 텔로스 라는 단어는 기본어 te,llew 텔레오에서 온 것으로 “제한하다”는 뜻이 있는데 “한계로서의 도달점, 즉 행위와 상태의 결국, 종착, 결과, 목적”을 의미하고 있다. 히브리어 문자 중 제일 마지막 글자 ת 타우 라는 단어의 의미와 일치하고 있다.

 

히브리어 단어로는 1431 ל󰕈�󰕀� 가달 이라는 단어는 1434 ל󰕊�גּ 게딜 “꼬인다, 실, 옷 술, 꽃 줄 장식, 꽃 모양의 무늬라는 의미가 있는 단어에서 유래되어 “크게 되다, 크게 만들다, 나아가다, 자랑하다, 기르다, 초과하다, 우수함, 자라나다, 증가하다, 올리다, 확대하다, 양육하다, 진정시키다, 거만하게 말하다, 망대”라는 듯을 함축하고 있다. 그래서 성경에서 실이나 옷 술, 꽃, 장식이나 무늬라는 단어가 나올 때 문자 그대로 인식해야 되지만 존재론적인 의미로 장성하고 상태에 있는 존재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을 영적인 해석이라고 치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나 사실적인 해석이라는 차원에서 깨달아야 하겠다.

 

고린도 전서 14장 20절에 “악에는 아이가 되고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은 악이라는 존재와 동료가 되지 말고 지혜라는 존재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동료로서 살아가는 지혜로운 삶을 가지라는 뜻이다. 히브리서 5장 14절에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것은 육체적인 성장에 따른 것도 있지만 정신적인 것과 영적인 것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성장된 상태 안에서 단단한 식물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요한복음 6:60에 “이 말씀은 어렵도다.”라고 한 표현은 원어의 본래의 뜻은 “이 말씀은 너무 단단하여 먹을 수 없도다”라고 되어 있다. 한국교회 강단의 설교를 음식으로 비유한다면 간단하게 먹는 스푸나 죽이라고 한다면 성경공부는 칼로 썰어 끊어 먹어야 하며 입으로 질겅질겅 씹어야 하는 본격적인 식사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교인들은 간단하게 식사하기를 원한다. 예배시간 설교의 시간이 오래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렇게 계속 식사한다면 영양실조에 걸리게 되어 있다.

 

시간이 가더라도 칼로 썰고 끊어서 오래 씹어야 하고 다양하게 섭취해야 한다. 성경공부를 몇 시간을 하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다만 공부한 내용을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성한 분량에 도달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목회자들로부터 시작하여 많은 성도들이 간단한 식사로는 만족할 수가 없을 것이다.

 

내 안에 존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라면 나도 자연스럽게 자라게 되어 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게 되면 나와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도 성장한다는 비결을 깨달아야 한다. 주님과 한 몸이 되었다고 하는 순간에만 머물지 말고 계속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자라나야 한다. 누가복음 1:40과 52의 말씀을 유념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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