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본 성
고린도전서 7장 1-7절 말씀도 음행에 대한 바울의 경고를 적고 있다. 바울은 성적인 욕구는 부부간의 관계에서만 허락되는 것임을 말하면서 음행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고전 6:18, 갈 5:19-21, 골 3:5, 살전 3:5, 4:3-4). 그러면서 성 행위에 대한 원칙을 제시한다. 이 구절(2-5절)을 허버트 마일스는 이렇게 새롭게 정리하고 있다. “인간에게는 강한 성욕이 있어 남자는 아내가 있어야 하고 여자는 남편이 있어야 한다. 남편은 정기적으로 아내의 성욕을 채워 주어야 하고 아내도 남편의 성욕을 정기적으로 채워 주어야 한다. 결혼하면 아내의 몸은 남편에게 속하고 남편이 아내의 몸을 다스리듯이 남편의 몸은 아내에게 속하고 아내가 남편의 몸을 다스린다. 서로 상대방의 성욕을 채워 주기를 거부하지 말아야 한다. 단, 기도하기 위해 당분간 금욕하기로 합의를 본 경우는 제외할 수 있다. 그러나 부부는 성욕을 다스릴 수 없으므로 이 기간이 지나면 다시 성교를 해서 서로 성욕을 채워 주어야 한다.”
히브리서 13장 4절은 성은 거룩하고 귀한 것임을 말씀하고 있다. 즉,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관계는 거룩하고 선한 것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성경의 여러 부분들, 예를 들면 마태복음 5장 32절, 19장 4-6절, 누가복음 16장 18절, 요한복음 3장 29절, 로마서 1장 26-27절, 고린도전서 7장 9절, 에베소서 5장 3-12절, 23-24절, 디모데전서 3장 2절, 디모데후서 2장 22절, 유다서 1장 7절 등도 성에 관한 하나님의 관점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3) 성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은 “함께 하도록 주신 여자”였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은 “머리로 주신 남자”이다. 여기에 어느 누구도 훔쳐갈 수 없는 비밀스럽고 아름다운 사랑의 비밀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남녀의 성을 파괴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짓이기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께서 ‘성’을 선물로 주신 목적을 크게 5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1) 생명의 창조를 통한 종족 생산(출산)의 목적(창1:27-28, 9:1, 시127:3)이 있다.
‘성’을 통해 우리 부부에게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위임하셨다. 하나님은 ‘복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명령하신 동시에 축복하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가정에서 양육될 자녀를 낳는 것(시 127:3)이 성을 주신 하나님의 첫 번 째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목적은 반드시 결혼을 배제한 성적 결합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혼전, 혼외 성교는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2) 예방의 목적이 있다.(고전 7:1-2)
성경에서 성행위를 금지하는 것은 항상 보호에 초점을 두고 있다.
3) 부부의 하나됨을 위한 목적이 있다.(창 2:24, 마 19:5, 막 10:8, 엡 5:31)
① ‘영혼의 친밀성’을 위함이다.
성은 영혼의 친밀성을 표현하기 위해 계획되어졌다. 하나님은 단순히 열정과 힘에 의한 사랑을 표현하기위해 성을 계획하시지 않았다. 성의 수학(數學)은 “1+1=1”이다. 신뢰와 사랑, 서로에 대한 안정감 등이 있을 때만 가능한 영․혼․육의 합일인 것이다.
② ‘육체적 연합’을 위함이다.
성은 육체적 연합을 위해 계획되어 졌다. 성은 깊은 수준의 육체적 결합을 창조하기 위해 계획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성관계에 있어 ‘삽입’이 수반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아내의 몸이 자기의 몸처럼 느껴지는 것은 육체관계 외에는 없다.(김인자)“는 말이 실감나는 것이다.
③ ‘관계의 연합’을 위함이다.
성은 관계의 연합을 위해 계획되어 졌다. 그래서 성경은 성교가 부부를 친숙하고도 밀접한 관계를 맺게 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어떤 사람과 친해지는 것은 우리의 가장 깊은 욕구중의 하나다. 그래서 상대방 앞에서 알몸이 되는 것은 육체적으로 뿐만이 아니라 정서적, 영적 합일의 상징인 것이다.
④ ‘영적 연합’을 위함이다.
성은 영적 연합을 위해서 계획되었다. 하나님께서 성을 일차적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행위로써 계획하셨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⑤ ‘하나됨을 위한 배타성’을 위함이다.
성은 결혼을 위해 배타적으로 보존되도록 계획하셨다. 성은 엄청난 가치가 있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고린도전서 7장 4-5절 말씀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배우자에게 자유롭게 줌으로써 이 은사를 즐겨야 하는 것이다.
성이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부부애 속에서 일생동안 헌신하면서 함께 살고 있는 남편과 아내 사이의 영적, 육체적인 축제인 것이다. 그래서 성생활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에드 휘트’는 “배우자 서로가 아무런 육체적인 친밀감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부부 두사람이 가졌던 모든 감정적이고 영적인 친밀감 역시 사라지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출산의 의미만을 강조하고 이 하나됨의 의미를 축소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특히 이 ‘한몸’이라는 개념을 그리스도께서 그의 신부인 교회와 영적으로 하나됨을 나타내는 지상적 형상임을 이해한다면 신비스러운 하나됨의 의미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부부가 육체적으로 친밀함을 경험 할 때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하나됨을 이 지상적인 개념을 통해 어렴풋이라도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은 성을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을 창조하신 중요한 의도는 바로 이것, 단순한 육체의 하나됨을 초월한 육과 혼과 영을 결합시켜 주는 것을 경험하게 하기 위함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4) 삶의 풍성함과 즐거움을 위함이다.(신 24:5)
성은 즐거움을 위해서 창조되었다. 성욕도 하나님이 주신 욕구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제정하신 결혼제도 안에서 사용할 때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창 18:9-12). 성적 포옹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인정하는 말씀도 잠언 5장 15-20절에 잘 나타나고 있다. 아가서에서도 성적 즐거움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아 5:10-16, 7:1-9). 하나님께서 주신 성을 즐기고 누리는 것이 축복인 것이다. 성행위란 매우 깊고 가깝게 남편과 아내가 서로 알게 되는 영교(靈交)와 동고동락하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육체관계를 통해서 하나가 되는 비결을 배우는 것이다.
5) 치료를 위한 목적도 있다.(삼하 12:24, 창 24:67)
성을 통한 치료의 역할, 이 또한 하나님의 의도이셨다. ‘사무엘하’에서 다윗의 아들이 죽었을 때 아내와 동침하는 장면이라든지, ‘창세기’에서 이삭이 모친 상사 뒤에 아내와의 관계를 통해 위로를 얻은 장면들을 살펴보면 배우자가 좋지 않을 일로 절망하고 있을 때, 스트레스나 슬픔이 있을 때, 육체적인 위로가 사랑을 나누어서 긴장을 풀어주는 역할을 함을 알 수가 있다.
‘즐거운 성’은 인격을 완성시키고 위로하며 하나가 되는 치료제로서 작용을 한다. 클라인벨 부부는 그들의 책 ‘The intimate Marriage’에서 ‘성은 감정적인 연합을 표현하는 즐겁고도 아름다운 방법일뿐 아니라 관계를 강화시키는 강력한 수단’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성교는 사랑을 키워주고 사랑에 의해서 자라난다’고 말한다. 또 ‘결혼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의 육체적, 정서적, 영적 연합은 벽을 넘어선 두 내면 세계를 연합시키는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말하고 있다. ‘육체적인 영들의 연합은 외로움과 내면의 고독을 없애주는 강력한 치료제’라는 것이다.
‘잭 도미니안(Jack Dominian)’도 그의 책 ‘Marital Breakdown'에서 “자존감이 낮고 자신감이 부족할 때 성행위는 안도감이상의 역할을 한다’면서 그것은 아마도 ‘배우자가 서로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치료의 처방책 중의 하나일 것’이라고까지 말하면서 ‘성의 치료 효과’를 강조하고 있다.
(4) 성에 대한 하나님의 10가지 기본 원리
‘성’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설계였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라는 점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다. 이외에도 성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주는 여러 가지 원리들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1) 성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기는 하나 결혼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사용될 때만이 거룩하고 선한 것이다(히 13:4). TV나 소설에서 멋있게 묘사하는 혼외정사에 대해 유혹되지 말라.
2) 성경에서 성행위를 금지하는 목적은 항상 보호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전 6:13). 따라서 절대 결혼 안에서 맛볼 수 있는 만족과 즐거움은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바로 쓰고 즐겨 쓰면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것이다. 육체관계는 결코 더러운 것이 아니다(창 1:31, 아 7:1-9).
3)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는 배우자에게 있다. 따라서 성은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철저하게 배우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생활은 결혼 생활에서 가장 희생적인 부분이어야 하고, 배우자를 즐겁게 해 주고자 하는 동기가 있어야 한다.
고린도전서 7장 3-4절 말씀을 통한 사도 바울의 권고를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내 아내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인데도 불구하고 자기 것인양 손도 못 대게 한다’라는 불평이 나와서는 안되는 것이다. 성은 결코 스스로는 채울 수가 없는 상호 의존적인 것이다. ‘그대가 원하신다면 언제든지’라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또 배우자가 아니면 어떠한 사람도 채워 줄 수가 없는 것이기에 서로를 섬기는 도구로서 사용되어져야 한다. 배우자의 성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은 나의 의무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를 거부하는 것은 배우자의 외도(外道)를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4) 부부간의 육체 관계에 제한은 없다. ‘두 사람에게 아무런 해가 되지 않고 제3자를 끌어들이지 않는 한 부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도 좋다’는 한 현인의 가르침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서로가 사랑을 표현하는 어떤 방법이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르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하고 제한없이 즐거움을 누릴 필요가 있다.
성경에서 금하는 성적 행위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린다 딜로우).
* 음행 ; 계모와 동침하는 것(고전 5:1), 창녀와의 성교(고전 6:13),
혼외정사(고전 7:2, 살전 4:3), 간음(마 5:32)
* 간음 ; 결혼하지 않은 사람과 동침하는 것(마 5:28).
* 동성연애 ; 레 18:22, 20:13, 롬 1:27, 고전 6:9
* 불순과 방탕 ; 처녀성을 잃어버리거나, 세속적 또는 이방인의 생활 양식에 따라 살게 됨으로써 더럽혀지는 것을 의미함(고후 7:1, 계 22:11).
* 혼음 ; 다른 부부들과의 혼음은 더 이상 고려의 여지가 없다.
* 매춘 행위 ; 성을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것.
* 음담패설 ; 부부 사이에 주고 받는 성에 대한 유머가 아닌 여타의 속된 말들 (엡 4:29, 5:4)
* 근친상간 ; 레 18:7-18, 20:11-21
* 남색(男色) ; 오랄 섹스로 생각하는 것은 오해이다.
성경은 동성연애, 성전에서의 매춘 행위를 가르킨다.
5) 창조적이고 자발적이어야 한다. 배우자에게 신선하고 자극적인 방법으로 성적인 만족을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남편들은 생활하는 데는 현모양처를 원하나 침실에서는 요부를 원한다’는 옛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아내가 남편에게 능숙하고 창의력 있는 파트너가 되는 것은 성경적으로도 합당한 것이다’(요셉 딜로우, ‘성에 대한 솔로몬의 지혜’에서).
6) 성관계는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지 성이 목적 그 자체일 수는 없다.
자칫 잘못하면 ‘성 숭배’에 빠질 우려가 있다. ‘성’을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가정의 평화를 이루게 하는데 더 큰 이유를 두어야 한다. 따라서 ‘성’에 대한 하나님의 가르침을 벗어날 때 하나님과의 화평도 깨어지고 배우자와의 화평도 금이 가게 된다.
7)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한 목적 이외에는 분방해서는 안된다.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전 7:5). 분방도 버릇이 된다. 자꾸 분방하다 보면 배우자가 곁에 있는 것 자체가 싫어지게 된다. 옆에 누가 있으면 잠 못 자는 버릇이 그래서 생긴다. 이유와 핑계는 없다. 절대 분방하지 말라.
8) 배우자를 조건 없이 받아들이라. 배우자의 성 욕구를 거절하지 말라.
성관계에는 어떠한 경우라도 ‘...하지 않는 한 나는 당신과 관계를 갖지 않을 것’ 이라고 하는 성적인 흥정이 있어서는 안된다. 솔로몬이 밤늦게 술람미 여인을 찾아 왔을 때 그의 요구를 거절했던 여인의 후회, 그리고 솔로몬을 다시 찾아 나서는 여인을 우리는 아가서에서 볼 수 있다.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는 사랑. 아무 조건 없이 배우자를 전적으로 수용하는 자세가 성생활에 필요한 자세이다. 따라서 배우자의 성적 욕구를 거절하는 것은 가장 밀도 깊은 좌절을 안겨 주는 셈이 되고, 이는 성생활의 문제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의사 소통의 좌절은 정신적인 의사 소통의 장애까지 유발하게 된다.
‘성’을 오용하지 말라. ‘성’을 배우자에게 대적하는 무기로 사용해서도 안되고 속이는 수단으로 사용해서도 안된다. 변덕스럽게 남편을 거부해서도 안되며 보복하기 위해 육체적 사랑을 억제하는 것은 죄이다.
“성행위의 주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 부부들에게 언제나 강력한 안도감을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서로를 필요로 하는 동안에는 서로가 원하고 상대방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기와 엄마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초기의 때묻지 않은 관계를 제외한다면 삶의 다른 데서는 증거를 찾을 수 없는 무조건적 수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잭 도미니안, ‘Marital Breakdown'이라는 책 중에서).
9) 성에 대한 남자와 여자의 필요와 반응이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여야 한다. 남자는 육체적인 것에 근거해서 행동하며 시각적 반응을 하게 된다. 그러나 여자는 감정적인 것에 근거해서 행동을 하며, 시각보다는 촉각 반응을 하게 되어 있다. 이런 측면에서 생각해 볼 것은 ‘하나님은 외모로 취하지 않는다’(벧전 1:17)고 해서 남편에게까지 하나님 수준을 요구하지 말라는 것이다. 남편은 하나님이 아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남편의 성적인 즐거움의 동기 유발을 위해 아내가 적극적인 행동, 즉 내적인 충만 뿐만이 아닌 외적인 아름다움도 유지할 필요가 있다. 베드로전서의 ‘외모로만 하지 말고’(벧전 3:3)의 말씀에 괜한 위안 받지 않는게 좋다. 이 말씀은 외모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속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비유일 뿐이다. 가장 아름다운 화장을 보여 줄 대상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 남편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10) 영적인 충만이 강해질수록 성의 신비스러움을 느끼는 정도도 깊어진다. 영적인 사람일수록 성을 멀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잘못이다. 영적인 성장을 하면 할수록 육체 관계에 대한 신비를 느끼고 더 즐긴다는 통계도 있다. 우리가 영적인 깨달음, 또는 중생(重生)했을 때 대지의 자연이 새롭게 다가옴을 느낀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성도 마찬가지이다. 영적인 깨달음 이후 하나님의 섭리를 알게 된다면 마찬가지로 배우자가 새롭게 눈에 띄게 될 것이다.
(5) 성, 너무나도 중요한 성
히브리어로 야다로서 ‘안다’(창 4:1, [d'y: knew)는 것은 ‘남녀간의 동침 즉 성교(性交)’를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을 언급할 때도 쓰여졌다. 또한 ‘성기’에 대한 단어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볼 때 성적 연합은 하나님과 그이 백성 사이의 관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신부라고 불렀고(사 49:18, 렘 16:9), 간음이라는 단어는 다른 신을 숭배하는 이스라엘의 죄를 묘사하는데 쓰여지곤 했다(렘 7:9, 23:10, 겔 23:37, 사 57:3). 이러한 성적 상징을 우리는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 말은 곧 성경에서 성을 얼마나 중요하게 보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잣대이기도 하다. 이제 성에 대한 개념을 바꾸어야만 한다. 성이라는 것은 이 땅을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복된 사건이다. 그러나 그 중요성을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남용하고 오용을 한다면 그야말로 인간에게 주는 저주가 될 수 밖에 없다. 성은 천국에는 없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된 부부로 살아갈 때 그 부부는 진정한 성의 기쁨과 희락을, 감격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성경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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