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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vade Syndrome(쿠바드 증후군)(펌)

여수룬1 2007. 6. 20. 00:53

Couvade Syndrome(쿠바드 증후군)

 

 

남자산욕(男子産褥), 혹은 쿠바드(couvade)라고 불려지기도 한다. 원시 고대 사회의 출산에 관한 습속으로써, 아내가 출산을 할 때 남편이 여러가지 의식으로 고통을 분담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스트레일리아 부족들은 아내가 출산을 할 때 고통을 분담하기 위해 바닷물 속에 뛰어들어가 숨을 참으며 자신의 한계를 희롱하고, 아프리카 부족들의 남성은 벌에 쏘이거나 땅바닥에 구르면서 아내의 출산 고통에 동참한다.

인류학자들은 '의만'의 형태가 코르시카섬, 키프로스섬, 에스파냐, 인도양, 인도네시아 몰루카 유럽의 피레네 산맥 일대와 인도 각지, 네덜란드 등에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내심 곤혹스러워했다. 대체 저것이 무슨 의미일까? 왜 남성들은 해산의 고통을 분담하려 하는 걸까? 마침내 가부장적인 인류학자들은 의만이 '아버지와 아들'의 연관 고리를 찾기 위한 남성들의 노력이며, 사회적 '부성'의 문화적 형태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같은 억측은 힘 한 번 제대로 못쓰고 부서지기 십상이다. 얼마나 '부성'을 찾고 싶었으면, 해산의 고통도 없는 멀쩡한 육체로 깨갱거리며 안간힘을 쓴단 말인가? 그 거짓의 고통은 외려 생물학적 '모성'에 대한 부러움 때문에 만들어진 건 아닐까? 설령 현대의 몇몇 남편들이 아내의 출산 고통에 직면했을 때 '감정 전이'에 의해 항체호르몬이 비정상적으로 분비되어 육체적인 이상을 느낀다고 해도, 그것이 생물학적, 혹은 사회적 부성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1980년대 이후 몇몇 지적인 여성 인류학자들은, 19세기 모건이나 엥겔스가 신화화했던 '모권제' 사회를 재발견했고 의만이 모권제 사회의 반영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요는 이렇다. 지구의 대규모 기온 변화가 있었고 이에 따라 생태계가 크게 바뀌었다. 당시까지만해도 나무 위에서 바오밥나무 따위를 뜯어먹고 살던 원숭이들은 먹이를 찾아 어쩔 수 없이 땅으로 기어내려와야 했고, 그네들은 먹을 것을 찾아 사바나를 횡단해야 했다. 직립보행은 사바나 횡단(그들이 10km를 가는 데는 오랜 기간이 걸렸다. 그것은 지금의 이동 개념과는 천양지차다)에서 얻어진 자연의 기적이었다. 우리는 그네들을 이족二足류라고 부른다. (이족류에 관한 헬렌 피셔 류의 이론은 사실 아직도 논쟁 중에 있다. 그리고 이 이족류에서 우리의 조상인 크로마뇽인까지 진화하는 데는 수백만년이 소요되었다)

사바나 횡단을 하면서 그네들은 점차 자신들이 육식 동물들과 대항할 수도 없거니와 혼자 생활이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사회적 유대'다. 동물을 사냥한 수컷들은 고기를 가져와(고기를 날랐던 '운반대'가 인간의 기초라고 주장하는 리키 가족의 주장을 신봉하는 인류학자들은 아직도 세를 형성하고 있다) 암컷과 새끼들과 나눠 먹었고, 암컷들은 수컷들이 사냥을 나간 사이 새끼를 등에 업은 채 도토리, 풀뿌리 등을 채집했다.

이 같은 수렵-채집 사회에서 '위대한 사냥꾼'인 남성들은 단백질을 배분하는 권력자였다는 점, 이것이 곧 시원적인 가부장제의 기원이라는 점은 여성 인류학자들도 적잖이 동조하는 바이다(에드가 모랭은 이 '위대한 사냥꾼들', 사냥을 위해 작전 모의를 하고 협력을 했던 수컷들에 의해 인간 사회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간들은 곧 단백질을 제공하는 동물들이 바닥날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스트레일리아에 상륙했던 처음의 인간들은 당시 그곳에 존재하던 거대 동물들을 모조리 잡아먹어서 씨를 말렸다). 더욱이 풀뿌리, 도토리, 열매 등을 채집하던 암컷들의 뇌에는 점점 기억과 지혜가 쌓이기 시작했고 그것들은 암컷 새끼들에게 전수되기 시작했다. 그네들은 먹을 것과 먹지 못할 것을 구분하는 법도 스스로 익혔다. 결국 먹다 남은 곡류 씨앗을 땅에 뿌렸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탄생된 것이 바로 '신석기 사회'다.

그리고 의만은 바로 암컷이 여성으로 진화되었을 때, 땅에 씨앗을 뿌려 정착촌을 구성할 때 구성된 습속이다. 동물을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길들여 가축화하고, 땅에 씨앗을 뿌려 수확하는 여성들은 당연히 분배의 권력, 생명의 권력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인류학자들은 청동기 시대로 넘어가기 직전의 사회에서 유독 풍요와 다산을 의미하는 여신상과 여성상이 등장하는 것을 목격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유일신, 여신과 나란히 존재하는 남신 등은 청동기 시대에나 나타난다.

당시의 여성은 풍요를 의미하고, 생산을 분배하며,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축복된 존재였다. 아기는 여성 혼자만이 낳는다고 생각되어졌다. 예컨대 당시의 출산 개념은 '단성생식'이었다. 남성은 임신과 출산 과정에 개입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따라서 남성들은 자신의 부성을 위해서 거짓 산고를 치뤄야만 했다. 아버지가 되기 위하여, 그네들은 그네들이 근접할 수 없는 출산의 세계를 모방하고 답습함으로써, 자신의 권리를 인정받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네들은 나중에 자신들이 '가부장제'의 이름으로 여성의 출산 권리를 찬탈하고 아기를 자신의 씨앗으로 못박는 세기가 올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사실 의만의 형태는 한반도에서도 발견된다. 내가 어렸을 적에 테레비에서 북쪽 의만의 형태를 희화화하는 프로그램을 보았던 것을 기억한다. 아내가 출산을 하는 동안 남편은 사다리를 타고 지붕 위에 올라가 마당에 뛰어내렸다. 거기서 아마 '평양 박치기'가 유래하지 않았냐는 어눌한 변사의 목소리도 똑똑히 기억난다. 의만은 희화화된 과거가 되었다.

그러나 그 찬란하고 탐욕스런 가부장제의 세기가 끝장나고 있는 이즈음, 우린 의만의 형태가 다시 회귀하는 것을 목격한다. 서구 의료가 생긴 지 500여 년이 지난 후에서야 남편은 여성의 출산 과정에 개입할 수 있게 되었다. 수술실에 들어갈 수 있게 되기까지 그 먼 거리를 우회했던 것이다. 여성의 출산을 남성이자 권력자인 '의사'의 시선 아래 전시하려는 억압이 붕괴되고 있다.

그것을 우린 현재 '사랑'이라고 표현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에 동참하고자, 생명 탄생의 고통과 기쁨을 함께 공유하고자 아내의 손을 꼭 부여잡고 엉엉 우는 최근의 여린 감성의 새내기 아버지들은 저 먼 과거의 의만을 다시 재현하고 있다. 이 의만의 힘은 하도 강해서, 아내의 육체가 가지고 있는 신비로움을 둘이 함께 공유하는 과정에서 현대 의료의 날조된 거짓말을 깨닫게 되었다. 수술대 위에 두 다리 벌려놓고 '환자'로 취급되는 여성의 신체되기를 거부하면서 그네들은 인류가 어떻게 아기를 낳았는지 오래된 기억과 지혜로 되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역사가 진보라는 믿음, 역사의 방향이 단선적으로 진일보할 거라는 믿음은 순전히 거짓이다. 우린 아직도 저 먼 과거의 기억들 속을 해매고 있을 뿐이다. 영겁회귀를 주장했던 니체의 말처럼, 희귀하되 다른 선율 다른 울림으로 회귀하는 것, 그것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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