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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케 하옵소서”에서 부흥이란 의미는?

여수룬1 2007. 5. 9. 11:05

“부흥케 하옵소서”에서 부흥이란 의미는?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자주 열리는 올해, 부흥이란 단어가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가운데 진정한 의미를 올바르게 깨닫고 부흥운동에 참여했으면 한다. 또한 교회마다 숫자만 늘어나고 교인들의 생활이 윤택해지는 외적인 부흥만 추구하지 않았으면 한다.

 

   부흥사들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 중에 부흥이란 단어는 신구약 전체를 통 들어 하바국 3장 2절 뿐이다. 부흥(復興)이란 단어는 한문(부흥(復興) 다시 부, 일(일어날) 흥 또는 흥(흥이날) 흥. 쇠잔하였던 것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영어(Revival;리바이벌=라틴어 re(다시)+vivere(산다)의 합성어로 다시 살아나다, 소생하다, 부활하다란 뜻을 가지고 있다.(신앙생활을 하는 도중에서 침체되어 마치 죽은 사람처럼 무 활동적인 상태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히브리어 원어로는 “하예후”는 영어의 live 동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 “하야”의 피엘(강조) 명령 형태에 ‘예후’라고 하는 3인칭 목적격 접미대명사가 붙어서 이루어진 단어로 직역하면 “그것을 속히 이루어 주소서”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잇는 부흥과 전혀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장 전후의 문맥으로 본다면 ‘악한 자들에게 내려질 심판을 속히 내려 주실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는 내용이다. 따라서 부흥이란 단어를 함부로 사용해서 안 된다는 것을 전제 아래 부흥회 때마다 부흥사들이 그리고 목회자들이 자의적인 해석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무엇이 부흥케 한다는 것인가? “하나님의 진리를 배워서 얻은 깨달음과 생명을 보호해 주시는 차원에서 악인들을 심판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뜻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진 부활된 생명이 창조주 사상을 호흡하며 내면세계에서 교통할 수 있도록, 사막처럼 홀로 남겨진 자처럼 아무데도 의지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주님과 연합하여 교통할 수 있도록 소중하게 울타리를 쳐달라는 의미로 속히 심판해 달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진리가 하나님의 의도대로 행할 수 있도록 성령의 능력이 발휘하여 하나님이 정해주신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성령의 나타나심이 생명력 있는 비전을 현실 속에서 실현해 줌에 따라 우리의 어두운 인식을 계몽하여 그리스도 사상으로 일체를 이루고 올바른 진리에 무릎을 꿇고 감사하는 것 부흥이다.

 

        따라서 부흥은 십자가 앞에서 무릎 꿇는 것 외에는 없다. 원산 대부흥 운동과 평양 대부흥 운동이 일어났던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내용은 다른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예수가 달렸던 십자가 앞에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라는 자세로 무릎 끓는 것 외에 어느 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교회가 성장되고 교인이 많아지며, 성전이 건축되고 교회 빚이 사라지며, 교인들의 생활이 윤택해지고 헌금이 많아지는 것이 부흥이라고 할 수 없다. 물론 쇠잔했던 것, 죽은 것이 다시 살아나는 것만이 부흥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 부흥이 되기를 원하는 것인가? 열거했던 것이 다 이루어지면 부흥이 끝났는가? 결코 아니다.

 

       그렇게 다 이루어져도 십자가 앞에 무릎을 더 꿇어야 한다. 죄가 많아 너무나 악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며 내면세계에 나와 함께 동거 동락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울타리 안에서 마음껏 움직이는 것이 시편 1:1에 나오는 “복, 아쉬레”를 계속 유지하기를 원한다면 “내게 주신 말씀들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속히 이루어 주십시오.”라고 단호하게 간청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부흥의 기초가 되어야 하며 이러한 부흥을 추구하는 한국교회가 되어야 역사와 전통을 이어온 것을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가 새로운 부흥의 역사를 일어나기를 원한다면 부흥의 올바른 인식과 함께 하바국 3:2과 같은 부흥의 기도가 쉬지 않고 계속되어야 한다. 자료출처/청골산 봉서방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