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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여진분계도(朝鮮女眞分界圖)와 한반도 괴지도의 비밀

여수룬1 2007. 11. 26. 14:50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는 "해동지도(海東地圖)"라는 총 8책으로 된 지도집이 있다.
이 지도집에 대한 규장각측의 총설에 의하면,

"해동지도(古大4709-41)  :(제작시기: 1750년대 초, 구성: 8책) 1750년대 초에 제작된 회화식 군현지도집.

(중략)

민간에서 제작된 지도집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데 활용된 관찬 군현지도집이다.

(중략)

해동지도는 당시까지 제작된 모든 회화식 지도를 망라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설명에 따르면 이 지도집은
어느 개인이나 하급관청에서 만든 어설픈 지도집이 아니라,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당대의 관련 지식을 총 동원하여 만든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지도집에서 당시 조선의 북방영토를 확인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지도를 발견했는데 해동지도의 3책에 수록된 "조선여진분계도(朝鮮女眞分界圖)가 그것이다.  



조선 여진 분계도(朝鮮 女眞 分界圖)(부분)

 

조선여진분계도 전체보기(원본크기)
http://blog.daum.net/sabul358/13708581



위 조선여진분계도의 서쪽 담장(?)너머는 청(淸)의 영역이고, 북쪽의 목책과 같은 책성을 경계로 하여 북쪽이 여진(女眞), 책성 이남(以南)이 조선의 영토임은

아무리 지도 지식이 전무한 사람이라도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즉, 흑룡강 하구(현 아무르강)에서 부터 서쪽으로 흑룡강에서 갈라지는 송화강(지도상의 혼동강)을 따라 북쪽 책성을 경계로 하여 개원(開原)에 이르러 남쪽으로 내려 온 장성과 맞닿고, 이 장성이 조-청간의 경계가 되며 그 동쪽이 모두 조선의 영토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조선여진분계도에 대한 규장각측의 개별설명은 참으로 암울한 것으로 현 제도권 사학의 인식이 어떠한가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중략)


이 해석의 가장 큰 오류는 청을 건국한 세력으로서의 여진과, 같은 여진으로 분류되나 청의 건국세력과는 태동 부터가 다른 북방여진(해서여진,야인여진)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청의 초기 건국세력은 조선영토(만주) 내에서 통치를 받으며 조선인과 다름없이 융화되어 살던 무리로서 이들은 명(明)에 의해 북방 영토를 위협받던 조선이 명을 견제키 위해 묵인 내지는 지원하에 힘이 키워져 예상치 않게 독립해 나간 세력이나, 또 다른 북방여진은  이들과는 전혀 성향이 다른 무리들로서 위의 지도는 그 북방여진과 조선의 접경을 그린것이고 서쪽에 나타나는 청과의 접경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다.

또, 만주가 청의 영역이였다면 서쪽에 저런 위치의 방어를 위한 성을 구축해야 할 이유도 없다.

이미 강성한 국가를 세운 청과의 접경도라면
조청분계도(朝淸分界圖)가 되어야 마땅한것이고, 위의 지도가 조청분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님은 결정적으로 해동지도에 이 조선여진분계도와 함께 수록된 중국도(십삼성도)를 보면 확연해 진다.


중국도(十三省圖)

위의 청나라 십삼성도(十三省圖)는 산해관 이동쪽이 중국(청나라)영토라는
어떠한 표식이나 기록도 없다.

조선여진분계도의 북쪽책성 이남지역(만주)이 청의 영토라면 당연히 함께 수록된 청의 십삼성도에 포함되어야 하지 않는가.

조-청간의 분계인 서쪽장성 이동지역은 청이 건국되기 전이나 건국후에 빠져 나간 이후에나 조선의 영토였고 위의 조선여진분계도는 청과는 다른 북방여진과의 접경지역을 그린 것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18C 조선의 영토가 어떠했는지 위의 조선여진분계도의 접경을 그대로
현대지도에 옮겨 보면 아래와 같다.



( 펀주: 조선 때 그려진 [조선여진분계도]는 동만주와 연해주를 찌그러지게 그렸고 
그걸 펴서 현대 지도에 옮기면 위와 같이 됨.) 

 

고지도의 지명,지형을 토대로 하여 그대로 옮겼을 뿐인데 상상외의 어마 어마한 조선의 영토가 나타난다.
우리가 조선도 하면 떠오르는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의 그림과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과연, 이것이 18C 이전 조선의 영토일까.

그런데, 이러한 모양의 조선지도를 언제,어디선가 본듯한 기억이다.
2003년, "한반도 괴지도"라는 이름으로 언론에 보도되기 까지 했던 바로 그 지도.

당시 의친왕의 손자인 이초남씨가 숙부의 유품이라며 지도한장을 공개 했는데
그 지도의 조선영토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라

잠시 화제에 오르다 묻혀버린 일이 있었다.


( 펀주 : 위 지도는 언론기사에도 소개되었던 것.)

한반도 괴지도 관련기사
http://weekly.chosun.com/wdata/html/news/200307/20030729000053.html

 


위의 지도는 조선에 왔던 교황청 소속 신부가 교구 획정과 관련하여 교황청에 작성해 보낸 서류에 첨부된 지도의 사본이라며 이초남씨가 공개한 문제의 그 괴지도이다.
원본은 교황청에 보관되어 있을 것이라는 얘기이고.

이 지도와 조선여진분계도를 토대로 재구성한 조선영토와는
유사하나 같다고 볼 수는 없는데. 그 다른점은 현재의 압록강과 백두산 이북쪽이 떨어져 나간 형세다.

그런데 이 떨어져 나간 부분이 설명되어 질 수 있는 것이 바로 청(淸)이 일방적으로 선포하여 만들어진 "봉금지역"인 것이다.

( 펀주 : [봉금지역]이란 청나라가 자신들의 발원지가 압록강 북쪽이라하여

거기엔 아무도 살지 못하게 한 것.)

 

지도가 만들어진 경과를 보면 조선여진분계도가 만들어지고 난 뒤, [봉금지역]으로 일부가 떨어져 나간 조선영토가 그려진 것이 바로 괴지도 이다.
아니, 괴지도가 아닌 18C 이전 조선의  실제 영토를 그린 지도인 것이다.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해동지도-기타-조선여진분계도)
                             (여지도- 기타-조선여진양국경계도)
http://e-kyujanggak.snu.ac.kr/GZD/GZD_JIMYUNGS.jsp?ptype=class&subtype=hd&lclass=01&mclass=%EA%B8%B0%ED%83%80


( 이상 [우리역사의 비밀] 향고도님 글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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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19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조선 정부의 [광여도] 중 [조선여진양국경계도] 일부 

 

( 원안의 [황제릉]이라는 것은 장군총, 태왕릉 등 거대 피라미드를 보고 붙인 이름 같다.)

 

이 지도는 위에 소개한 18세기 해동지도의 "조선여진분계도(朝鮮女眞分界圖)" 와 비슷한데 만주에 조선의 것으로 보이는 관청의 표시까지 해놓았다.

 

즉 19세기 전반까지는 동간도 뿐만 아니라 서간도(압록강 이북)도 사실상 조선인의 영역으로 보이고 조선 정부는 이를 관리할 관청까지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청나라의 [봉금지역]선언과 관계없이 또 1712년에 청나라의 강압으로 만들어진 백두산 정계비와도 상관 없이 만주 대부분 지역이 19세기 전반까지는 실제적으로는 조선의 강역으로 볼 수 있다 하겠다.

 

즉 만주는 고려, 조선때도 많은 기간 사실상 한국의 영역에 속했다 하겠다.

 

 

 

 

이 지도는 1924년의 한국 가톨릭 교구 편성도.

 

한국교회사연구소 최기영 실장 

" 이 지도는 1924년 파리 외방정교회가 영문·불문판으로 발행한 것"

" 한국의 가톨릭(Catholicism en Coree)이란 인쇄물에 별지로 들어가 있던 지도"

 

그렇다면 1924년 까지도 바티칸(교황청)은 동간도(북간도)를 한국영역으로 보고 있다는 것.

 

청나라는 1909년 일제와 [간도협약]이라는 것을 체결하고 만주의 여러 이권을 일제에 넘겨주는 대신에 북간도(동간도)를 청나라 영토로 일제에 의해서 인정받는다.

 

북간도를 받는 대신에 일제에 여러 이권을 넘겨주었다는 자체가 그때까지도 북간도 즉 위 지도의 두만강 이북 지역이 청나라의 영역이 아니었다는 얘기.

그때까지도 북간도는 대부분 조선인들이 사는 조선의 영역이었다는 얘기.

 

만약 청나라 영역이었다면 일제에 이권을 대가로 주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간도협약]이라는 것 자체가 1909년 까지도 북간도는 한국의 영역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

 

후에 간도(연해주 포함)에 진출한 중국과 러시아에 의해서 간도는 차차 한국영역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얼마전까지만 해도 [연변 조선족 자치주] 인구의 대부분이 한국인이었고 그래서 중국이 그 지역을 [조선족 자치주]로 했다.

지금도 많은 수의 한국인들이 살고 있다.

 

조선 성종의 명에 의해 만들어진 한국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輿覽)]에 '우리 국토가 (삼천리가 아니라) 만리(萬里)'

'고려 영토가 동북방(두만강 북쪽)으로는 고구려보다 더 넓었다.'는 기록이 나오는 것이 위의 [조선여진분계도(朝鮮女眞分界圖)]와 합치한다 하겠다.

즉 만주와 연해주는 고려, 조선때도 많은 기간 사실상 한국의 영역에 속했던 면이 많았다 하겠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18세기 영국서 제작한 아시아전도.
흑룡강성 일대를 조선에 포함시켰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1740년 예수회가 선교를 목적으로 프랑스어, 네덜란드어로 제작한

‘La CHINE avec la KOREE et les Parties de la TARTARIE’ 지도.
만주의 많은 영역이 한국땅으로 되어 있다.
 
 
 만주와 독도 <- 관련글

 

 

 

( 필자는 영토분쟁을 위해 위 글을 소개한 것은 아니고 한국고대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소개하는 것입니다. 만주와 연해주가 한국인들에게 어떤 공간이었나 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유럽처럼 앞으로 아시아도 (나아가 전세계가) 차차 국경의 장벽이 없어지고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게 되리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