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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총은 고조선의 작품

여수룬1 2007. 8. 19. 23:20

장군총은 고조선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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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총
- 장군총은 생각보다 크기가 훨씬 크다.

 

그 유명한 장군총.
한 밑변 길이 32미터, 높이는 12미터가 넘는다. ( 5층 아파트 높이)
 
결론부터 말하자면 장군총은  '고구려 임금의 무덤'이 아니다.
장군총은 고구려보다 훨~씬 더 오래된 무덤이다.
장군총에 기대어 세워진 12개의 [선돌(자연석 돌기둥)]과 
장군총의 배총인 4개의 [고인돌]도 이를 밝혀준다.
 
[장군총 고인돌 - 원래는 4방에 있는데 지금은 1개 남음.]
 
[선돌]과 [고인돌]은 대강 기원전 2세기까지 만들던것.
즉 광개토대왕때보다 약 6백년 전에 이미 그만 만들던 것들.
그런데 6백년 후인 광개토대왕때 갑자기 다시 세웠다고?
 
장군총이 고구려때 만들어진 것이라는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장군총 내부]
 
장군총은 [고구려 무덤들]하고 완전히 다르다.
형식도 완전히 다르고 벽화도 없다.
 
 
[고구려 무용총 천장]
 
무용총 천장과 장군총 천장을 비교해 보시라.
만일 장군총이 광개토대왕의 무덤이라면
벽화도 없이 저리 만들어 놨을까.
그 수많은 고구려 벽화를 생각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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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덕흥리 유주자사 고분 벽화]
 
위 [덕흥리 유주자사 고분]은  永樂十八年(영락18년)
즉 광개토대왕 즉위 18년에 죽은 유주자사의 무덤이라고
아예 글까지 써놓은 무덤이다. 물론 무덤이 흙속에 있다.
광개토대왕의 신하 무덤에는 저렇게 그림에 글씨까지 다 있는데
장군총은 그림도 글씨도 전혀 없다.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백제 무령왕릉]
 
진짜 고구려 무덤은 대강 위와 같이 생겼다.
 
즉 진짜 고구려 무덤은 땅 속에 들어가 있다.
장군총은 벽화도 없다.
도대체 장군총이 고구려 무덤이라는 근거가 없다.
단지 [장군총이 고구려 무덤이라고 믿게 하고픈 사람들]이 있을 뿐. 
 

[고구려 시조 동명왕릉 - 평양 역포구역 용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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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시조 동명왕릉 (북한 평양)]

 

위 사진에서 보이듯이 고구려 초기 때 이미  피라미드에 흙을 덮는다.

그래서 겉보기에는 하단만 돌피라미드고 그 위는 흙이 보인다.

그런데 안에는 좀 변형된 피라미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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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왕릉 묘실을 바라본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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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왕릉 묘실의 천정구조]

- 천정 주위로 벽화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고구려 초기에 이미 [고분 벽화]를 그린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장군총에는 그림도 전혀 없다.)

 

정사각형 모양으로 돌들을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게 쌓아올린 형식.

변형된 피라미드다.

위와 같이 동명왕릉때는 이미 피라미드 건축구조가 상당히 달라져 있다.

 

[고구려 각저총 구조도]

 

동명왕릉도 위 각저총과 구조가 비슷하다. 

즉 안에다가 작은 피라미드 형식의 묘실을 만들지만
전체적인 구조는 장군총과 많이 다르다.
장군총이 고구려때 것이라는 근거가 없다.
 
 
[고구려 덕흥리 벽화고분]
 
위 덕흥리 고분은 수백자의 글자가 발견되어서 유명한 유주자사 진의 무덤.
그런데 이 고분에 쓰여진 것이
이 고분을 광개토대왕 18년에 만들었다는 것. 
즉 광개토대왕과 같은 시대의 무덤.
그런데 이 고분은 피라미드 형식이 좀 남아있긴 하지만 
이미 많은 변화를 보인다.
광개토대왕의 무덤은 이 무덤과 비슷한 형식으로 
크기만 클 것이다.
즉 장군총을 광개토대왕이나 장수왕 무덤으로 볼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 고구려사를 완전히 삼켰다고 생각되면 쭝국 당국은
[진짜 광개토대왕 무덤 발견]을 대대적으로 선전할 것이다.
그들은 [진짜 광개토대왕 무덤]을 이미 발견한 것으로 본다.) 
 
 
예전에 처음 장군총 내부를 발굴한 학자는 일본인.
그 일본인 학자는 말했다.
" 장군총 내부에서 '호태왕'이라는 위패를 봤다." 고.
그래서 장군총이 광개토대왕의 무덤이라고 
즉 고구려때 만들어진 거라고 '확실히'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의 말이 웃기지 않는가.
위패를 봤다?
그 위패를 어떻게 했는데.
명색이 학자라는 자가 그걸 그냥 놔두고 나왔나? 도굴당하라고?
그는 장군총에서 발굴했다고 어떠한 유물도 제시하지 못했다.
물론 다 도굴당했을 거라고 했겠지.
다 도굴당했는데 위패만 남아있었나^^
만약 위패가 있었다면 '그게 얼마짜리인데' 도굴범들이 그냥 놓고 갔을까.
 
그 일본인의 의도는 간단하다.
' 장군총은 고구려때 거니까 그리들 알고 있어. 딴 생각 말고.
고구려때 거라고~~~'
 
왜냐하면
일제는 고구려, 백제, 신라 이전의 한국사는 없게 하고 싶었다.
일본의 쌀농사, 금속문명이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에 의해서
불과 2천4백년전에 시작했기 때문에 (야요이 문명) 
그들은 그 이전의 한국사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고구려, 백제, 신라 이전의 한국에는 변변한 문명이 없는 것처럼 많드는 것이
일제총독부의 큰 임무중 하나였다.
자존심도 상하고 또한 [뿌리가 얕은 일본]이
[뿌리가 깊은 한국]을 통치하는 것이 명분이 안 서기 때문.
그래서 그들은 한국의 고대역사책들을 강제수거해서 불태워버리고
(일부는 일본으로 가져감.)
여러 유물을 부숴버렸다. (단군릉 등) 
이는 일본만이 아니라 식민통치를 하던 나라들이 흔히 했던 짓.
 
어찌됐던 장군총은 고구려때 만들어진 거라고 알려졌다.
근거는?
없다.
어느 일본인의 '호태왕 위패 봤어요~' 하는 헛소리밖에는.
 
요새는 어떤 중국인들이 좀 더 '고도의 공작'을 부리신다.
장군총과 태왕릉이 '고구려 무덤' 이라 믿게 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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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왕릉]
 
 

[장군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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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왕릉은 원래 장군총과 똑같이 생겼다.
지금은 많이 무너졌지만 장군총과 같은 [피라미드]인 태왕릉.
장군총보다도 몇배 크다.
무너진 후 지금 높이만 해도 15미터 - 원래 높이 25미터 추정. (10층 아파트 정도)
한 밑변 길이 64미터 (장군총은 32미터)
 
태왕릉이 너무 커서 한국인의 자부심을 죽이려고 
누군가가 일부러 돌을 끌어가고 무너뜨린 것 같다. 
좀 작은 장군총은 남겨두고. 
 
태왕릉의 그 수많았던 큰돌들을 개인이 가져가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일제 등 어떤 조직적인 세력이 가져갔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일.부.러.
 
태왕릉 같은 피라미드들을 중국과 일제가 많이 없앴을 것이다. 
장군총은 '작아서' 살아남아 있고.
 
1990년도부터 중국학자들이 태왕릉을 본격발굴했다.
그런데 발굴한 유물은 하나도 공개하지 않는다.
하.나.도.
유물이 하나도 없었던지 숨기고 있던지 둘 중 하나인데 
 
태왕릉에 [태왕릉]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이유는
[태왕릉]이라는 글자가 써진 벽돌이 발견된 곳이 거기라고  
[누군가]가 말했기 때문.
 
 
저 명문전(글자 써진 벽돌) 중에 [원태왕릉안여산고여악(願太王陵安如山固如岳)]
즉 태왕릉이 산처럼 변하지 않기를 기원한다는 귀절이 있다.
 
태왕릉은 장군총처럼 생긴 [돌 피라미드].
그런데 난데없이 무슨 벽돌인가.
장군총에도 벽돌같은 건 없다.
 
벽돌은 다음과 같은 무덤에 쓰이는 것.

[백제 무령왕릉 내부 - 온통 벽돌]

 
태왕릉은 크기만 클뿐 장군총과 똑같이 생긴 [돌 피라미드]
장군총에도 벽돌이 없다. 돌만 있다.
당연히 태왕릉에도 벽돌같은 건 없다.
만약 태왕릉 위에 [사당]을 지었다 해도
기둥하고 기와는 나오겠지만
거기서 벽돌이 왜 나오나. 
 
그런데 왜 [태왕릉 벽돌]이 현 [태왕릉이라 부르는 피라미드]에서 나왔다 하는가.
" [태왕릉 벽돌] 그거 지금 [태왕릉이라 부르는 피라미드]에서 나온 거야.
그거 그러니까 고구려 무덤이야.
딴 생각 말어. 알았지? "
 
해놓고는
 
'그들'은 얼마전에는 다시 한번 '쐐기'를 박았다.
 
" [태왕릉이라 불리는 피라미드]에서 '호태왕'이라고 써진 방울(종)이 나왔거던.
그게 진짜 거기서 출토된 건지는 의심하지 말어...허엄...
그거 고구려때 무덤이야. 알았지?
호태왕 방울(종)이 진짜 거기서 출토된 증거는 ...없지만...허엄..."
 
이러고 있다.
 
국내학자들도 말하기를 특히 동북꽁정 이후에는
중국이 발표하는 고구려 등 고대한국사 관련 유물 출토지는
- 믿을 수 없다. 
 
일본학자는 " 장군총에서 호태왕 위패를 봤는데...안갖고 나왔다..."
어쩌고 횡설수설 하면서 장군총이 고구려 거라고 믿게 하려고 하더니
 
중국학자는 돌 피라미드에서 왠 벽돌이 나왔니 어쩌니 하더니  
호태왕 청동방울(종)이 거기서 나온거라 하고...
 
둘 다 필사적으로 장군총이 고구려때 거라 믿게 하려 한다.
사람들을 기만하고 있는 것. 
 
장군총과 태왕릉에서 발견되었다는 유물은 딱 3개.
( 그 중 1개는 단지 봤다는 것.)
그런데 희한하게 그 3개가 모두 [태왕]이라는 글자가 써있는 것들.
 
1. 장군총에서 [호태왕] 위패 봤다. - 일본 학자  
2. [태왕릉] 이라 써진 벽돌 발견한 곳은 태왕릉. - 중국학자 
3. [호태왕] 이라 써진 청동방울종 발견한 곳도 태왕릉. - 중국학자
 
감이 오시는가.
장군총과 태왕릉에서 발견되었다는 유물이 단 3개인데
모두 [태왕]이라는 글자가 써진 것들. 
'우연'치고는 너무 공교롭다.
 
어떻게 장군총과 태왕릉에서는 [태왕]이라는 글자가
써진 것만 발견되나. 
 
그들은 장군총과 태왕릉이 고구려때 것이라 믿어지기를
'너무나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학자라는 사람들이 공식적으로 저러한 기만을 할 정도로.
 
( 그나저나 [호태왕 벽돌]하고 [호태왕 청동방울(종)]이 나오긴 한 걸 보면
어딘가에서 진짜 호태왕릉을 발견했다는 얘기.
벽돌을 많이 써서 만들어진 땅속 진짜 호태왕릉이.
그게 어딘지 중국당국은 밝혀라.
그리고 [태왕릉이라 불리는 피라미드]에서 나온 유물들 좀 공개해주면 고맙겠다.)
 
그런데!
이집트 대피라미드(기자피라미드)와  장군총은 극히 비슷하다.
겉 모양도 장군총을 그대로 크게 만들면 이집트 대 피라미드.
이 글 위에서 다루었듯이
이집트 대 피라미드는 그 만든 양식이 다른 이집트 피라미드들과 많이 다르다.
게다가 다른 이집트 피라미드들에서 숱하게 나오는 [이집트 벽화]도
대 피라미드에는 전혀 없다.
다른 유물도 전혀 없다.
(대피라미드는 도굴된 흔적이 전혀 없다.
도굴하기 어렵게 지어 놨다.)
 
장군총도 다른 진짜 고구려 무덤들하고 형식이 완전히 다르다.
장군총도 다른 [진짜 고구려무덤]에서 숱하게 나오는
[고구려 벽화]가 전혀 없다.
다른 유물도 전혀 없다.
 
[이집트 대피라미드 왕의 방]
 
위 사진에도 보이듯이 [이집트 대피라미드 왕의 방]은 장군총과 같은 모양.
 
[장군총 내부]
 
장군총 내부 저 방의 천장 돌은 무게가 무려 백톤!
이건 이집트 대피라미드 것보다 훨씬 더 크다. 
 
[장군총 내부]
 
장군총에도 이집트대피라미드 왕의 방에 있는 것 같은
석관(돌관)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석관(돌관)은 고대한국에서 흔히 만들던 것.
한반도에는 고인돌처럼 석관이 널려있다.
 
아래 사진은 그 중 한 예. 
‘마산 진동리 유적(馬山 鎭東里 遺蹟)’의 석관묘.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4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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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의 무덤으로 보이는 위 석관이 여러개의 판돌을 써서 만들었다면
장군총 정도 되는 데에는 이집트 대피라미드처럼 통석관이 있었다고 보인다.
도굴꾼이나 어떤 나라의 학자가 장군총에서 훔쳐갈 거라고는 
그 통석관 밖에 없었다.  
 
장군총과 이집트 대피라미드가 내부도 아주 비슷하다.
돌 쌓은 모습도 비슷하고 둘 다 벽화도 유물도 전혀 없다.
장군총도 통석관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피라미드의 표면에 작은 돌들로 덧쌓은 것만 걷어내면 
대피라미드는 장군총과 겉모양도 똑같다.
 
즉 이집트 대피라미드와 장군총은 같은 문명의 유물.
그런데 고대 이집트인이 한국에 온 흔적은 전혀 없다.
고대한국인이 이집트에 간 흔적은 많다.
세계 학자들은 [고대 동북아에서 이집트로의 이동]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 [동북아]가 바로 고대한국.
 
 
 
 
위 사진은 요녕(만주 서부) 홍산문명의 피라미드 무덤.
일종의 돌관(석관)묘인데
겉모양은 피라미드.
석관묘가 피라미드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겠다.
압록강 주변에는 장군총 말고도 저것보다 훨씬 더 큰 피라미드들이
무려 1만2천기나 있다.
 
 
 
황하문명의 뿌리인 만주서부 홍산문명이라는 것도
[환인 환웅 배달문명]의 한 지류(가지)에 불과하다.
만주남부 압록강 지역에 널려있는 저 한민족 피라미드들.
이에 대한 발굴은 중국당국이 이미 오래전에 했고
유물은 하나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시작한 것이 동북꽁정.
때가 되면 중국당국은 세계에다 대고 대대적으로 선전할 것이다.
 
' 고조선사도 쭝국역사라고 보고...근거는 없지만...허험...
그러므로 고조선 전 역사도 쭝국역사라고 보고...흐허허험...
그러므로 저 피라미드들도 쭝국역사라고 보고...크하하하...
거래서 피라미드도 쭝국의 창조물이고...캬캬캬캬...
쭝국인들이 이집트가서 피라미드 만들었네...쿄쿄쿄쿄...
사실은 세계 문명이 쭝국에서 시작됐네...켁켁켁켁...
(거짓말 하려니까 목에 좀 걸리는군...음...)
사실은 북한까지 다 쭝국거거던~~~
그냥 우기면 다 우리거거든~~~
영국, 미국, 프랑스도 쭝국에 조공했었거든~~~
세계가 다 쭝국거거든~~~"
 
이런 의도로
동북꽁정을 지나서 그들은 '탐원꽁정'이라는 이름까지 붙인것.
탐원이란 근원을 찾는다는 것인데
탐원꽁정이란 중국의 근원만 찾겠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세계 문명의 근원인 고대한국문명을 통째로 삼키시겠다는 말씀.
사실 으스스한 짓거리다.
 
허나
세계 학자들을 모두 포섭하기는 불가능할 것이고
결국 동북꽁정, 탐원꽁정은 역사왜곡의 대표적인 사례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도 양심적인 학자들은
동북꽁정, 탐원꽁정을 굉장히 우려하고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수는 없으므로.
결국 쭝국에 개망신만 갖다 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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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단군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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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단군릉
 
 
 
 
 
 
 
위 사진들은 평양 단군릉 사진들 (북한 복원)
 
일제가 때려부순 단군릉을 재건하면서
북한은 장군총과 거의 똑같은 모습으로 복원했다.
 
만약 북한이 단군릉을 조작한 것이라면
장군총과 거의 비슷하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장군총을 고구려때 것이라 알고 있는데
고조선 무덤을 장군총과 같게 만들어 놓으면
조작한 거라는 의심을 살게 뻔하기 때문.  
 
단군릉이 장군총과 비슷한 모양인 것에 대해서 북한 측은
" 모르겠다. 고구려인들이 단군릉을 재건축한 걸수도 있고..." 라고 했다.
조작이라 하기에는 좀 어설픈 모습.
 
단군릉은 조작된게 아닌것 같다.
북한은 단군릉의 유골이 [5,011±267년]전 사람의 것이라 말했다.
5천년도 더 전 사람의 유골이라는 것.
단군왕검은 약 4천3백여년 전 분이라 알려져 있는데 
7백년 정도 차이가 난다.
 
만약 북한이 조작을 했다면
유골이 4천 3백~4백년 전 사람의 것이라 했을 것이다.
'엉뚱하게도' 5천년전을 이야기 하는 것을 보면
단군릉은 조작된게 아닌 것 같다.
 
재건하면서 단지 규모를 좀 더 크게 지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태왕릉은 단군릉보다 더 크다.
 
단군릉 - 높이 22 미터,  한변 길이 50 미터
태왕릉 - 높이 25 미터 , 한변 길이 64 미터
 
그러므로 혹시 단군릉 규모를 부풀려 재건했다 하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장군총, 태왕릉도 단군릉과 비슷한 시기의 것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아리안(알이안)을 찾아온 독일학자]들도 
만주, 서안 한민족 피라미드들의 유물 공개를
중국당국에 촉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황해 바다 속에는 1만년 이상 전의 초거대 피라미드들이 있겠지만.
이집트 최대 피라미드들의 원형인 거대 피라미드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