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구입한 미 고물함정이 첫 군함 반세기 만에 꿈의 이지스함 건조 1970년대 자주국방 내세워 국산 함정 도입 본격적으로 추진 독도분쟁으로 ‘대양해군 계획’ 수립 한국 구축함 건조 잇따라
1950년 6월 25일 저녁 부산에서 세 시간 가량 떨어진 해상에서 해군 백두산함(PC-701)은 수상한 선박과 마주쳤다. 동해안을 따라 부산으로 내려오고 있는 정체불명의 이 화물선은 백두산함의 수기신호나 조명신호에도 응답이 없었다. 85㎜로 추정되는 포와 기관총도 눈에 띄었다.
북한군 함정임을 확인한 백두산함의 7.62㎝(3인치) 주포가 먼저 불을 뿜었고 상대방도 포를 쏘며 응사했으나 북한 함정은 이내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침몰했다. 이 대한해협 해전은 규모는 작지만 우리 해전사상 첫 승전을 기록한 의미가 큰 해전이었다.
이처럼 중요한 공을 세운 해군 백두산함은 당시 해군참모총장 손원일 제독부터 말단 수병에 이르기까지 정성스럽게 모은 성금 1만8000달러로 구입한 것이었다. 1949년 10월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에 있는 해양학교 실습선 ‘화이트헤드 소위(Ensign Whitehead)’호를 구입, 수리한 뒤 7.62㎝(3인치) 주포를 달고 백두산함이라 명명했던 것이다. 화이트헤드 소위호는 450t급 내외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연안 초계정(PC-461 Class)이었다.
1972년부터 우리 해군은 미 해군이 현대화 프로그램으로 퇴역시킨 기어링급 구축함을 넘겨받기 시작했으며 처음으로 해군에 구축함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2차 대전에 사용한 구형이었지만 군함을 건조할 능력이 없는 우리로선 마다할 형편이 안됐다.
1970년대는 자주국방의 기치 아래 본격적인 국산 함정 도입이 추진됐다는 점에서 우리 해군 발달사에서 의미가 크다. 대표적인 것이 울산급 호위함과 동해·포항급 초계함이다. 울산급은 1981년 1월 1번함이, 동해급은 1982년 1번함이, 포항급은 1984년 1번함이 각각 취역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사수해온 연평해전과 서해교전의 주역 참수리 고속정도 이 무렵 집중적으로 건조됐다. 1980년대 말 이후엔 특히 독일제 209형 잠수함을 도입, 처음으로 본격적인 재래식 잠수함 보유국이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998년 광개토대왕급 한국형 구축함(KDX-I·3500t급)이, 2002년 충무공 이순신급 한국형 구축함(KDX-Ⅱ·5000t급)이 각각 건조, 배치된 것도 모두 이 계획에 따른 것이다. 이지스함과 1800?급 214급 잠수함, 독도함 진수 등은 대양해군 계획이 10년 만에 결실을 거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군 관계자는 “육해공 3군 가운데 해군이 전력증강 및 조함(造艦)계획을 착실하게 단계적으로 추진해 가장 잡음 없이 전력증강 사업을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
1950년대_ 미국으로부터 퇴역 함정 사들여 배치. 최초로 도입한 ‘백두산함’은 1950년 6월 25일 인민군 600명을 실은 북한 증기수송선을 부산 인근 앞바다에서 격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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