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이스라엘이 그 열조의 지킨 것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로 시험하려 함이라 하시니라"
(2:22)
사사(士師)라는 말은 우리 나라에는 없는 어휘다.
그러나 옛날 중국에서는 법령과 형벌을 맡아보던 재판관을 사사라 칭하였다.
히브리어로 '쉬페티임' 이라고 하는 이 말은 '심판자들' 또는 '판결자들' 이라는 뜻으로, 오늘날 재판관에 해당된다. 한자로 풀이하면 군사 지도자, 즉 장군쯤으로 풀이하는 것이 무난할 것 같다.
또는 '해방자' 또는 '통치자' 라는 뜻도 된다.
그러나 당시 통치자라면 세습되는 것이 상례다. 그런데 사사들은 당대에 한정되는 직책이었다.
그렇듯 이방 족속을 심판하기 위하여 시한적으로 일정 기간 세운 지도자들이 사사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출할 때는 모세가 그 지도자였고 여호수아는 그 다음 지도자였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죽고 난 뒤, 지도자가 없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고 싶은 대로 이방 신들을 섬기는 등, 실로 난잡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왕을 세울 때까지 13인의 사사들을 내세워 백성들을 지도한 사람이 바로 사사들이다.(BC.230 ~ 1013)
그러니까 당시 미정복의 땅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이미 정복된 지역도 이방 민족들이 그대로 잔류하면서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13인의 사사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간다.
그래서 사사기를 읽으면 악의 세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불의한 세력이라는 것이 왜 필요한가도 터득하게 된다. 때로는 병마가 우리를 괴롭히고, 때로는 환경이 우리를 괴롭힌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얼마나 우리의 영혼을 아름답게 하고 우리의 마음을 겸허하게 하는 조건들인가?
도덕가는 의지로서 고통을 물리치려 한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성령으로서 고통을 이겨낸다.
크리스천은 도덕가가 아니다.하나님께 의지하는 자다.그러므로 모든 것을 자기보다 더 강한 하나님에게 맡겨 버리고, 그 거룩한 영에 의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평소에는 나 자신을 잘 모른다.
그저 괜찮은 사람쯤으로 생각해 버리기 일쑤다.고난을 겪고 났을 때 자신이라는 존재를 비로소 발견하게 된다.우리는 고난을 통해서 참된 자아를 발견할 수가 있다.
예수를 믿는다면 그리스도의 영이 내 안에서 자라야 한다.
그래서 옛사람을 죽여 버리고 날마다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
사랑과 미움은 상호 왕래한다.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 사람 또한 나를 사랑할 리가 없다.
저 사람이 날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마찬가지다.
주님이 날 사랑하고 있다는 믿음이 확증되면 주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그들은 한동한 평화를 누렸지만 점점 하나님을 잊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방 족속을 보내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혔다.
백성들이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고 좌절할 때,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손길을 펴 주신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요, 사사기의 흐름이다.
그러므로 사사기를 읽으면 튼튼하고 돈실한 믿음이 날개를 단다.
주를 경외하지 않으면 벌받는다거나 사업이 망한다거나, 그런 협박 때문에 믿는 신앙이 아닌, 참되고 알찬 신앙이 두텁게 자리한다.진짜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런 두터운 믿음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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