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성경상식

세례란?

여수룬1 2007. 7. 13. 00:54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 마 28:19∼20 -

Ⅰ. 이끄는 말

일반적으로 각종 종교 단체마다 신앙에 입문하고자 하는 자는 그 과정에서 치루어야 하는 그 나름의 의식(儀式)이 있기 마련이다. 기독교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에 입문하려는 자들에게도 치루어야 하는 의식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세례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신앙고백을 하는 자에게 목사가 물을 가지고 베푸는 의식이다. 이 세례의식은 초대교회시대부터 많은 변천과정을 거치며 오늘에까지 전해져 왔다. 세례의식에 대한 의미는 물론, 그 양식(樣式)까지도 다양하게 변질되기도 하고 때로는 수정되기도 하면서 많은 수난을 겪으며 오늘에 전해진 것이다. 그 결과 세례의식은 로마교회를 비롯한 기독교 교회 안에 성례(聖禮)로서의 필수적인 의식으로 자리매김이 되었다. 그러나 세례의식에 대한 견해가 교파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 주장을 달리하고 있어 일반 신자들에게 신앙적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

로마교회는 세례가 중생(重生)을 가져 온다고 말한다. 세례가 신자의 원죄를 비롯하여 세례 받을 때까지 범한 죄책(罪責)으로부터 구출하고, 영원한 형벌과 현세에 있어서의 형벌에서 벗어나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신자가 구원을 얻는데 있어서도 필수조건이라고 주장한다. 그런가 하면, 신자로 하여금 거룩하게 되는 은혜와 신망애(信望愛)의 초자연적인 덕성(德性)들을 가지게 해서 영적인 갱신(更新)을 이루게 하며 유형교회와 연합을 이루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그들은 세례의식 자체가 대단한 신통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종교개혁자 루터도 세례에 관해 로마교회의 주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는 세례 주는 물을 보통 물로 보지 않고 내재적(內在的)인 신적 능력을 가진 말씀으로 말미암아 중생의 씻음을 위한 은혜로운 생명의 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그와 같은 물에 의한 세례가 중생의 결과를 가져 온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하면, 세례의식에 사용되는 물이 대단한 요술적 효능(妖術的效能)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개혁파 교회는 세례가 신자들을 위해 제정된 것으로서, 신자에게 중생케 해서 새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 중생된 생명을 강화(强化)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세례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씻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에게 접합됨과 은혜언약의 모든 유익에 참여함과 주님의 사람이 되기로 언약 맺음을 표시하며 인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세례는 신자의 외적인 표징(標徵)이라는 뜻이다.

침례파의 경우는 세례가 물을 뿌리는 의식이 아니라, 물 속에 잠겼다가 나오는 침례(浸禮)의식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세례가 신자에게 물을 뿌려 그의 죄를 정결케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에 대한 상징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신자에게 물을 뿌리거나 부어서 주는 세례를 주지 않고 물에 잠그는 침례만을 준다. 이렇게 그들은 세례의 양식(樣式)을 매우 중요시 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다양한 주장들 외에도 세례의식 자체의 폐지를 주장하는 자들까지도 있어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많은 혼선을 일으키게 하고 있다. 그리고 세례의식 자체가 어떤 요술적 효능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이를 미신적으로 수행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래서 죽은 시체에게 세례를 베푸는 일이 있는가 하면, 어떤 교사들은 소위 성지순례(聖地巡禮)를 다녀 오면서 세례의식에 사용하려고 콜라 병에 요단강 물을 넣어 가지고 오는 자들이 있다. 그리고 그 물로 세례를 베풀어 수세자들로 하여금 신비감(神秘感)에 젖어들게 하는 웃지 못할 일까지 자행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이미 세례를 받은 신자가 호기심에 충동이 되어 다시 세례를 받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세례의식으로 인한 여러 가지 신앙적인 부작용은 교회가 내용보다 의식을 앞세우는 과오에서 뿐만 아니라, 세례에 대한 성경적인 정확한 이해의 부족에서 나타나는 결과이다. 그러므로 건전한 기독교 신앙생활을 위해 세례의식에 대한 성경적인 올바른 정립이 필요하다. 이를 위하여 세례의 어의를 비롯하여, 그 근거와 양식, 그리고 그 의미와 목적을 알아 보기로 한다.

Ⅱ. 세례의 어의(語義)

새국어사전을 보면, ‘세례’란 기독교에서 신자가 될 때에 베푸는 의식이라고 전제하면서, 종파에 따라 머리 위를 물로 적시기도 하고, 머리에 물을 붓기도 하며, 몸을 물에 잠그기도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기독교 대백과사전에서는 ‘세례’란 종교적인 정화(淨化)의 상징으로서 물을 사용하는 의식이라고 전제하고, 신약성경에 있어서 ‘세례’라는 용어는 주로 세례 요한에 의하여 수행된 의식과 오순절 이후로 기독교 공동체에 가입하는 정규적인 방편이 되었던 기독교 의식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사전적 정의들은 ‘세례’에 대한 본질적인 정의가 아니라, 단순한 형식적인 정의에 불과한 것이다.

‘세례’라는 말에 대한 본질적인 뜻을 알아 보기 위해, 먼저 신약성경에서 사용된 헬라어 원문의 뜻을 알아보기로 한다. ‘세례’라는 말은 헬라어 원문으로 ‘�티스마(βάπτισμα)’라고 하는데, 이는 ‘물에 가라 앉히다’ 그리고 ‘물에 잠그다’ 혹은 ‘물에 적시다’ 그리고 ‘착색하다’라는 뜻을 지닌 ‘�토(βάπτω)’의 반복형인 ‘�티조(βαπτίζω)’에 관련된 용어로서, 가끔 ‘�티스모스(βαπτισμό󰐠�)’로 쓰이기도 한다. 특히 ‘�티조(βαπτίζω)’는 물로 ‘휩쓸다’(즉 완전히 ‘젖게하다’) 그리고 ‘세례를 베풀다’ 혹은 ‘씻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 이와 같이 ‘세례’라는 말은 매우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침례파에서는 개혁파 교회들이 ‘�티스마(βάπτισμα)’라는 단어를 물로 ‘씻다’라는 뜻이 강조된 ‘세례(洗禮)’라는 말로 번역한 것을 배격하고, 물에 ‘잠그다’라는 뜻이 강조된 ‘침례(浸禮)’라는 말로 번역할 것을 고집한다. 그러나 ‘�티스마(βάπτισμα)’라는 단어에는 물에 ‘잠그다’라는 뜻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물로 ‘씻다’라는 뜻도 있다. 뿐만 아니라, 물에 ‘적시다’ 혹은 ‘착색하다’ 곧 물감을 적셔 물들게 한다는 뜻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뜻을 지닌 ‘�티스마(βάπτισμα)’라는 단어를 신약성경에서 사용했기 때문에, 그 뜻의 강조점에 따라 ‘세례’라고 번역하기도 하고, 또는 ‘침례’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 뜻의 강조점에 따라 ‘세례’에 대한 견해가 교파마다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여러 가지 신앙적 혼선은 물론, 여러 가지 갈등과 같은 부작용을 일으키는 하나의 요인이 되고 있다.

Ⅲ. 세례의 근거(根據)

기독교의 세례는 그 근거가 매우 독특하다. 종교적인 세례의식은 기독교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방종교들도 세례와 비슷한 의식을 하나의 종교적 상징으로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방종교에서도 세례와 비슷한 의식들이 바다에서 목욕을 하거나 혹은 물을 뿌리는 형식으로 행하여 졌다. 그래서 혹자들은 기독교의 세례의식이 이방종교들의 의식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세례의식은 이방종교들의 의식과는 다르게 그 근거의 독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 근거는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데, 구약적 근거와 신약적 근거로 구별이 된다.

1. 구약적 근거
기독교 세례의식의 구약적 근거는 하나님 여호와의 역사섭리에서 찾는다.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노아 시대에 물로 온 세상을 심판하셨다(창 7:6).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홍해 바다를 지나게도 하셨다(출 14:21~22). 그리고 모세를 시내산에 오르게 하셔서 부정한 것을 물로 정결케 하는 규례를 명하신 바도 있다(레 14:). 이러한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역사섭리는 기독교 세례의식의 구약적 근거가 된다.

노아시대에 온 세상이 물로 멸망되었다. 그것은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시대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고 그 마음과 생각의 계획이 악했기 때문에 홍수로 심판하신 것이다.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친히 창조하신 사람으로부터 모든 짐승과 공중의 새에 이르기까지 다 홍수로 멸하신 것이다. 그러나 노아에게는 은혜를 입혀 그의 여덟 식구만은 구원해 주셨다(창 7:6~7). 이에 대하여, 사도 베드로는 그의 서신에서 노아의 식구가 홍수, 곧 물로 세례를 받아 구원을 얻었다는 의미로 기록하고 있다(벧전 3:20~21). 다시 말하면, 사도 베드로는 홍수심판을 노아 가족이 물로 세례를 받아 구원 얻은 사건으로 본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홍해를 건넜다. 그것은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시려고 홍해를 건너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하는 애굽 바로의 군대들을 홍해에서 바다 물로 덮혀 죽게 하였다. 그러나 애굽에서 사백년 동안 종살이 한 이스라엘 자손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려고 홍해를 갈라 건너게 하셔서 구원해 주셨다(출 14:21~30).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구름 아래 있고 바다를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세례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고전 10:1~4). 다시 말하면, 사도 바울이 출애굽 당시 홍해가 갈라진 것을 이스라엘 민족이 세례를 받아 구원 얻은 사건으로 본 것이다.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시내산에서 물로 정결케 하는 규례를 명하셨다.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불결하게 되었을 때에 정결케 하여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하시려는 것이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부정한 것에 접촉한 이스라엘 백성은 회중들로부터 따로 떨어져 있게 하셨다. 그러나 불결한 백성이라 할찌라도 물에 씻거나 물을 뿌려서 정결케 된 자는 회중에 거하게 하라고 모세에게 명하셨다(레 14:, 15:11~13). 이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의 율법에서 명한 여러 가지 씻는 육체의 예법으로는 양심상으로 오전케 할 수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히 9:9~10). 다시 말하면, 히브리서 기자가 부정한 것을 물로 씻는 율법의 결례를 정결의 표상 곧, 세례의 의미로 본 것이다.

2. 신약적 근거
기독교 세례의식의 신약적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에서 찾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출현하기 앞서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백성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세례 요한에게 요청하여 세례를 받으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분부하신 것이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은 기독교 세례의식의 신약적 근거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출현하시기 전에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다. 세례 요한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며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들에게 요단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다(마 3:1~7). 그것은 세례 요한이 구약의 언약대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기 위한 것이다. 혹자들은 세례 요한이 물로 베푼 세례가 구약의 결례에 따른 것이라고 말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단순한 구약의 결례에 따른 것이 아니라, 특별히 하나님께서 직접 명하신 말씀에 따른 신적 권위에 의한 것이었다(막 11:29~32, 눅 7:30). 그래서 세례 요한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고 명하셨다는 것을 밝혀 주었다(요 1:33). 그러므로 세례 요한의 세례는 단순히 구약의 결례에 따른 것 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에 의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 요한에게 친히 세례를 받으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의를 이루시려고 요단강에 이르러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이다. 여기서 의를 이룬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의미로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것을 말한다. 그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예수 그리스도 위에 임하였다. 그리고 하늘로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라는 소리가 있었다(마 3:13~17). 바로 성령과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해 주신 것이다. 세례 요한도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물로 세례를 주는 목적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는 것이라고 하였다.(요 1:31)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분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후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시고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분부하신 것이다(마 28:19). 여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라는 말은 헬라어 원문으로 ‘에이스 토 오노마(εί󰐠� τὸ ὄνομα)’ 라고 하는데, 이는 ‘이름에로’ 또는 ‘권위로서’라는 의미이다. 여기서는 전후 문맥으로 보아 ‘이름에로’라는 의미보다 ‘권위로서’라는 의미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에 주 예수의 권위로서 세례를 베풀었다(행 8:12~13, 16:33, 18:8). 그런데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권위로서’ 세례를 주라고 분부하셨는데, 제자들은 ‘주 예수의 권위로서’ 세례를 주었다. 그 까닭은 아버지와 성령의 권위는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권위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자들이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사도권을 부여 받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이신 ‘주 예수의 권위로서’ 세례를 준 것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요한의 세례를 받은 자들에게 ‘주 예수의 권위로서’ 세례를 받게 한 사실이 있다(행 19:5). 이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분부에 의한 것이었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이 예수의 분부에 따라 베푼 물 세례는 세례 요한이 베푼 물 세례와 의미가 다르다. 예수의 제자들이 베푼 세례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영접하는 자들에게 베푼 세례이다. 그러나 세례 요한이 베푼 세례는 오실 예수를 영접키 위해 유대교에서 회개하고 요한에게로 돌아오는 자들에게 베푼 세례이다. 따라서 예수의 제자들이 베푼 세례와 세례 요한이 베푼 세례는 의미가 다른 것이다.(행 19:1~7 참조)

Ⅳ. 세례의 의미

우리말 신약성경은 기독교 세례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으로 말미암아 죄인을 ‘구원하는 표’라고 하였다. 사도 베드로가 그의 서신에서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라고 말하였다(벧전 3:21). 여기 “표”라는 말은 헬라어 원문으로 ‘안티튀폰(ἀντίτυπον)’이라고 하는데, 이는 ‘대치’ 또는 ‘상응’이라는 의미의 ‘안티(ἀντί)’라는 단어와, ‘도장’ 또는 ‘자국’이라는 의미의 ‘튀포스(τυπο󰐠�)’라는 단어의 합성어로서, ‘일치하는’ 즉 ‘대표’ 또는 ‘상대’라는 의미이다. 우리말 성경 히브리서 9장 24절에서는 ‘안티튀파(ἀντίτυπα)’라는 말을 ‘그림자’로 번역했다. 그러므로 ‘안티튀폰(ἀντίτυπον)’이라는 단어는 원형과 같은 ‘표상(表象)’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따라서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으로 말미암아 죄인을 ‘구원하는 표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섭리는 죄를 속하여 정결케 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를 삼아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게 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구원섭리의 표상은 그 구원섭리의 원형(原形)과 같이 표현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세례의 의미는 다양하게 언급할 수도 있으나, 크게는 둘로 분류가 된다. 첫째는 속죄로 인한 정결의 표상으로서의 의미이고,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연합의 표상으로의 의미이다.

1. 정결의 표상으로서의 의미
기독교 세례는 신자가 불결한 죄에서 정결함을 얻는 표상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세례에 대한 정결의 표상으로서의 의미 안에는 이와 관련된 다양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죄를 씻는 것, 옛사람을 벗는 것, 죄를 극복하는 것 등이다. 그러나 세례가 육체의 더러움을 씻어 제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세례가 “육체의 더러움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 가는 것”이라고 했다(벧전 3:21). 구약시대의 결례는 실제로 물을 뿌리거나 부어서 육체의 더러움을 제하는 규례였다(레 14:). 이러한 구약시대의 결례는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택한 자들의 불결한 죄를 대속해 주실 것에 대한 예표인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교회시대의 세례는 육체의 더러움을 씻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불결한 죄가 씻겨진 선한 양심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정결의 표상인 것이다. 따라서 구약시대 결례를 행함에 있어, 육체의 더러움을 씻기 위해 더러운 몸에 물을 붓거나 뿌리듯이, 신약교회시대 영적인 불결한 죄를 씻는 정결의 표상으로 수세자에게 물을 붓거나 뿌리는 세례양식을 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는 죄를 씻는 정결의 표상으로서 의미를 가지고 있다.

2. 연합의 표상으로서의 의미
기독교 세례는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는 표상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세례에 대한 연합의 표상으로서의 의미 안에는 이와 관련된 다양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옛사람을 벗는 것, 새사람을 입는 것, 새생명으로 사는 것 등이다.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수세자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받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였다(롬 6:3~4). 구약시대 노아의 홍수심판 때에는 실제로 악한 사람과 생물이 다 죽었고 노아의 여덟 식구는 구원을 얻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이 홍해를 건널 때에도 실제로 애굽 바로의 군대들이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구원을 얻었다. 이러한 구약시대의 세례는 신약시대에 신자가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죄에서 죽고 새생명 가운데서 살게 될 것에 대한 예표인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교회시대의 세례는 실제로 사람이 육체적으로 죽고 사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연합의 표상이다. 따라서 구약시대 세례를 행함에 있어, 실제로 사람을 홍수나 바다물 속에 잠기게 하여 죽게 하고 노아의 가족과 이스라엘 자손은 살게 하듯이, 신약교회시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살으심과의 연합의 표상으로 수세자를 물 속에 잠기게 했다가 물에서 올라오게 하는 세례양식을 취하는 것이다.

Ⅴ. 세례의 양식(樣式)

신약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신약교회시대의 세례는 그 양식이 분명하지 않다. 그것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세례의 양식(樣式)을 구체적으로 분부해 주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이는 세례 양식 자체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를 포함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례 양식이 구체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교파에 따라 세례 양식이 서로 다르며, 이에 대한 논쟁 역시 만만치 않다. 어느 교파에서는 수세자를 깊은 물에 잠그는 양식을 취하기도 하고, 어느 교파에서는 수세자의 머리에 물을 붓거나 뿌리는 양식을 취하기도 한다. 그래서 전자처럼 물에 잠그는 양식을 ‘침례(浸禮)’라 하고, 후자처럼 물을 붓거나 뿌리는 양식을 ‘세례(洗禮)’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세례에 대한 양식은 크게 둘로 구분된다. 첫째는 수세자를 물 속에 잠그는 침례 양식이고, 둘째는 수세자의 머리에 물을 붓거나 뿌리는 세례 양식이다.

1. 물에 잠그는 침례
‘침례’는 세례 받을 자를 깊은 물에 잠그는 의식을 말한다. 우리말 성경에 ‘세례’라는 말로 번역된 헬라어 ‘�티스마(βάπτισμα)’라는 단어가 물에 ‘잠그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수세자를 깊은 물에 잠그는 ‘침례(浸禮)’로 의식을 행한다. 침례파에서는 물에 잠그는 침례가 세례의식의 절대적 양식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티스마(βάπτισμα)’라는 헬라어 원문이 물에 ‘잠그다’ 라는 의미이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세례’가 예수의 죽으심과 살으심을 상징하는 것이라 해서, 수세자(受洗者)가 반드시 그의 죽으심을 상징으로 깊은 물 속에 잠겨야 하고 그의 살으심을 상징으로 물 속에서 올라와야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침례파에서는 세례를 예수의 죽으심과 살으심에 대한 상징에만 그 의미를 두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오직 수세자를 물 속에 잠그는 침례만을 고집한다.

‘침례’는 물 세례의 한 양식이 될 수 있다. 그것은 ‘�티스마(βάπτισμα)’라는 헬라어 원문의 뜻은 물론이지만, 세례에 대한 구약의 근거에 대한 하나님 여호와의 섭리를 보면 알 수 있다. 노아 시대에 하나님 여호와께서 홍수로 심판하실 때에 온 세상이 온통 물에 잠기게 하셨다. 그리고 출애굽 시대에 하나님 여호와께서 홍해를 건너게 하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을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게 하셨다. 뿐만 아니라,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자기에게 나아 오는 무리와 예수에게 세례를 베풀 때에 강물에 잠그게 했는지는 분명히 알 수 없으나, 강물에 들어간 것만은 사실이다. 이는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마 3:16) 라는 말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그리고 세례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살으심에 대한 수세자의 동참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때, 물 속에 잠겼다가 올라오는 침례는 세례의 한 양식이 될 수 있다.

2. 물을 붓거나 뿌리는 세례
‘세례’는 수세자의 머리에 물을 붓거나 뿌리는 의식을 말한다. 우리말 성경에 세례라는 말로 번역된 헬라어 ‘�티스마(βάπτισμα)’라는 단어가 물에 ‘잠그다’라는 뜻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물로 ‘씻다’라는 뜻도 있고, 또는 물에 ‘적시다’ 혹은 ‘착색하다’라는 뜻도 있다고 해서 수세자에게 물을 붓거나 뿌리는 세례로 의식을 행한다. 그런데 침례파를 제외한 대부분의 개혁파 교회는 수세자에게 물을 붓거나, 혹은 물을 뿌리는 양식을 취한다. 그리고 굳이 원하는 자에게는 물에 잠그는 양식을 취해도 무관하다는 태도를 취한다. 그것은 ‘�티스마(βάπτισμα)’라는 헬라어 원문이 물에 ‘잠그다’ 라는 의미를 비롯해, 물로 ‘씻다’ 또는 물에 ‘적시다’ 혹은 ‘착색하다’라는 뜻도 있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세례’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으로 수세자 영혼의 죄를 씻는다는 상징(象徵)이라 해서 수세자(受洗者)의 머리에 물을 붓거나 뿌려야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침례파를 제외한 대부분의 개혁파 교회에서는 세례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으로 죄를 씻는 정화(淨化)의 상징에만 그 의미를 두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물을 붓거나 뿌리는 세례를 주장한다.

‘세례’는 물 세례의 한 양식이 될 수 있다. 그것은 ‘�티스마(βάπτισμα)’라는 헬라어 원문의 뜻은 물론이지만, 세례에 대한 구약의 근거에 대한 하나님 여호와의 섭리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출애굽 당시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시내산에서 불결한 백성을 물로 정결케 하는 규례를 명하셨다. 이 규례는 백성이 불결하게 되면 그를 물로 씻거나 그에게 물을 뿌려서 정결케 하는 것이었다(레 12:, 15:11~13). 그래서 역사적으로 전통 교회들도 물을 붓거나 뿌리는 방식으로 세례를 베푼 것이다. 그리고 세례가 불결한 죄를 씻어내는 정결의 의미로 이해할 때, 물을 붓거나 뿌리는 세례는 세례의 한 양식이 될 수 있다.

Ⅵ. 세례의 목적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주라고 분부하신 세례는 그 목적이 분명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승천을 앞에 두고 제자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분부하신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목적은 여러 가지로 열거할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목적을 간추려 정리하면, 첫째는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고, 둘째는 믿는 자에게 구원에 대한 확신을 주는 것이다. 복음 전파와 구원의 확신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그래서 이들 목적은 서로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전도자가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여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하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1. 복음의 전파
기독교 세례의 목적은 복음의 전파이다. 이는 세례의 객관적인 목적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분부하신 것은 구속의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그러므로 세례는 복음 전파의 한 방편이다. 복음은 전도자들이 언어로 전하는 방식을 통하여 전해지기도 하지만, 세례라는 방식을 통해서도 전해지는 것이다. 그것은 세례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를 대속하시는 정결의 표상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자와 한 몸이 되는 연합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결과 연합의 표상에는 온 세상에 전파할 복음의 내용이 담겨져 있다. 다시 말하면, 속죄를 통해 한 몸을 이루시는 구원에 대한 복음의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라고 하셨다(마 28:19~20). 다시 말하면, 모든 족속에게 세례도 주고 가르치기도 하며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세례는 복음 전파의 한 방편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므로 세례는 의식적인 성례로서의 의미보다는 복음 전파의 한 방편으로서의 의미가 큰 것이다. 알고 보면, 예수께서는 의식적인 성례로서 세례보다는 복음 전파의 한 방편으로서 세례를 주라고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것임을 알 수 있다.

2. 구원의 확신
기독교 세례의 목적은 구원의 확신이다. 이는 세례의 주관적인 목적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분부하신 것은 수세자에게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하시려는 것이다. 따라서 세례는 신앙 성숙의 한 방편이다. 신자의 신앙 성숙이 교사들의 복음에 대한 가르침을 통하여 되기도 하지만, 세례라는 복음 전파의 방편을 통해서도 되는 것이다. 그것은 세례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를 대속하시는 정결의 표상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자와 한 몸이 되는 연합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정결과 연합의 표상에는 신자의 신앙을 성숙시키는 복음의 내용이 담겨져 있다. 다시 말하면, 속죄를 통한 구원의 복음에 대한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라고 하셨다(마 16:16).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며 세례도 주어서 구원을 얻게 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세례는 신앙 성숙의 한 방편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므로 세례는 의식적인 성례로서의 의미보다는 신앙 성숙의 한 수단으로서의 의미가 큰 것이다. 알고 보면, 예수께서 의식적인 성례로서 보다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하는 신앙 성숙의 한 수단으로서 세례를 주라고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것임을 알수 있다.

Ⅶ. 끝맺는 말

세례는 현대 기독교 안에 신구교가 공히 거룩한 의식, 곧 성례(聖禮)로 자리매김이 되고 있다. 개신교 안에서는 세례와 성찬, 두 개의 성례 가운데 하나로 행해지고 있다. 세례는 분명히 신구약성경에 근거한 것이다. 이방 종교 집단들에게서 행하는 세례 비슷한 의식과는 그 근본이 판이하게 다르다.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섭리와 예수 그리스도의 분부의 말씀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세례가 ‘성례’라는 명목하에 인간적인 온갖 조작을 곁들여 신비스러운 예식으로 집행되어져야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에 있다. 이에 대한 해답은 세례의 의미와 양식, 그리고 목적을 올바르게 이해함으로 얻을 수 있다.

기독교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표상이다.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시는 정결의 표상이며, 죄인을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게 하시는 연합의 표상이다. 이와 같은 표상으로서의 세례는 온 세상에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고 수세자로 하여금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하는 데 근본적인 목적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세례에 있어서 수세자의 머리에 물을 붓거나 뿌리는 세례나, 수세자의 전신을 물속에 잠그는 침례와 같은 양식 자체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분부하실 때에 구체적인 양식을 제시해 주신 바가 없다. 그런데 교회가 세례의 양식을 이모 저모로 유추해서 공교한 성례로 만들어 교회의 표지(標識)가 되는 거룩한 의식으로 행하는 것은 무리이다. 교회의 표지는 오직 말씀이다. 개혁파 교회가 주장하는 교회의 삼대표지(三大標識) 가운데, 성례는 말씀 전파의 수단이고, 권징(勸懲)은 말씀 전파의 결과이다. 따라서 세례는 교회의 표지로서의 성례의식보다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표상으로서 복음 전파와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하는 하나의 방편으로서의 의미가 부각된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라는 방편을 통하여 온 세상에 구원하는 속죄의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수세자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신다는 말이다.

성경적인 기독교 세례는 그 의식 자체에 구원의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구교에서는 세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개혁파 교회에서 주장하듯이 단순히 구원 받은 표나 교인이 된다는 표에 지나는 것만도 아니다. 그렇다고 침례파가 주장하듯이 수세자가 반드시 전신을 물에 잠그는 침례를 받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어떤 자들의 주장처럼 세례를 폐지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세례는 땅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곳에서 언제든지 성례의식으로서가 아니라 말씀 전파의 방편으로서 행해져야 한다. 그래서 세례를 통하여 구원의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고 복음을 믿는 자에게 구원의 확신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 막 16:15~16 -

출처 : Tong - LoveBridge님의 그리스도의 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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