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방/다시보는 한국사

윤봉길 의사 친필 `출사표' 첫 공개

여수룬1 2007. 5. 1. 21:02

매헌(윤봉길 의사)은 거사 이틀 전 ‘너희도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의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 깃발을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잔 술을 부어 놓으라’며

두 아들에게 유언을 남긴다.

그의 용솟음치는 애국정신은 김구를 감동시켰다.

“거사일 새벽 아침밥을 먹는데 마치 농부가 힘든 일을 나갈 때처럼 태연자약하게 아침밥을 잘 먹었다”고 ‘백범 일지’는 적고 있다.

최근 공개된 “따뜻한 고향을 버리고 쓰라린 가슴을 부여잡고 압록강을 건넜다”는

그의 출사표가 더욱 가슴을 때린다.

해방 이후 김포공항에 도착한 즉시, 김구는 매헌의 유가족부터 찾는다.  

김구가 가장 좋아했던 서산대사의 선시가 영롱하게 빛을 발하는 4월의 마지막 휴일이다.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 눈이 온 들판을 걸을 때 어지러이 걷지 마라.

오늘 내 발자취가 뒤따라오는 자의 이정표가 되리니.  

 

[매일신문 2007년 04월 28일 - 윤주태 중부본부장]

 

------------------------------------------

윤의사 출사표  "쓰라린 가슴을 부여 잡고 압록강을 건넜다."

 

< 윤봉길 의사 친필 `출사표' 첫 공개 >
[연합뉴스 2007-04-27 ]
윤 의사 친필 '출사표' ..의거 전 백범에게 보낸 결의와 각오

(서울=연합뉴스) 강건택 기자 =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 의사가 `상하이 의거' 직전의 비장한 각오를 적은 친필 출사표 사진이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됐다.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사업회'는 중국 상하이 훙커우(虹口)공원 의거 75주년을 이틀 앞둔 27일

윤 의사가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에게 써준 자신의 이력서인 `자서약력' 가운데

굳은 각오와 결의를 담은 출사표 부분의 원본 사진을 공개했다.

이 글의 내용은 이미 알려진 것이지만 한자를 섞어 다소 급하게 흘려 쓴 친필의 본 모습은 공개된 적이 없었다.

`자서약력'은 의거 이틀 전인 1932년 4월27일 윤 의사가 훙커우공원을 답사한 뒤

"남기고 싶은 글이 있으면 전해달라"는 김구 선생의 요청을 받고 즉석에서 연필로 수첩에 쓴 글로

해방 후 해외에 유출됐다가 다시 돌아와 국립중앙박물관에 비공개로 보관돼 있다.

국내 활동과 상하이로 오게 된 과정, 유언시 등 11쪽 분량의 글을 2시간 만에 적어낸 것이라

흘려 쓴 필체와 곳곳을 고친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자서약력 중 출사표에 해당하는 이 글에서 윤 의사는 "나는 여기에 한 가지 각오가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뻣뻣이 말라가는 삼천리 강산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수화(水火)에 빠진 사람을 보고 그대로 태연히 앉아 볼 수는 없었다"며 의거를 결심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윤 의사는 또 "나의 철권(鐵拳)으로 적(敵)을 즉각으로 부수려 한 것이다...(중략)...

사랑스러운 부모형제와 애처애자와 따뜻한 고향산천을 버리고,

쓰라린 가슴을 부여 잡고 압록강을 건넜다"며

거사를 앞둔 비장한 심정을 드러냈다.

다음은 윤 의사가 남긴 친필 출사표 전문.

"23세,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우리 압박과 우리의 고통은 증가할 따름이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 각오가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뻣뻣이 말라 가는 삼천리 강산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수화(水火)에 빠진 사람을 보고 그대로 태연히 앉아 볼 수는 없었다

여기에 각오는 별것이 아니다

나의 철권(鐵拳)으로 적(敵)을 즉각으로 부수려 한 것이다

이 철권은 관(棺)속에 들어가면 무소용(無所用)이다

늙어지면 무용이다

내 귀에 쟁쟁한 것은 상해 임시정부 였다

다언불요(多言不要), 이 각오로 상해를 목적하고

사랑스러운 부모형제와 애처애자와 따뜻한 고향산천을 버리고,

쓰라린 가슴을 부여 잡고 압록강을 건넜다"

firstcircle@yna.co.kr

--------------------------------------------

끝까지 의연하게 순국한 윤봉길 의사


서울 용산구 효창동 효창공원내.

열사 이봉창, 의사 윤봉길, 열사 백정기의 묘소.

----------------------------------------------

 

 

당시 중국인들은 이렇게 탄식했다 한다.

' 이 많은 중국인 중에 어찌 안중근, 윤봉길 같은 인물이 없나.'

 

 


장제스(장개석) 대만 전 총통이 1967년 윤봉길 의사 유족들에게 전달해준 친필 붓글씨.

( 장렬(烈)함이 천추(秋)에 살아있다는 뜻.)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