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초(약초)
[Canon] Canon EOS 300D DIGITAL 1/125ms F50/10 ISO100 |
과목:인동과
산과 들의 양지바른 곳에서 자란다. 길이 약 5m이다. 줄기는 오른쪽으로 길게 벋어 다른 물체를 감으면서 올라간다. 가지는 붉은 갈색이고 속이 비어 있다. 잎은 마주달리고 긴 타원형이거나 넓은 바소꼴이며 길이 3∼8cm, 나비 1∼3cm이다. 가장자리가 밋밋하지만 어린 대에 달린 잎은 깃처럼 갈라진다. 잎자루는 길이 약 5mm이다.
꽃은 5∼6월에 피고 연한 붉은색을 띤 흰색이지만 나중에 노란색으로 변하며, 2개씩 잎겨드랑이에 달리고 향기가 난다. 화관은 입술 모양이고 길이 3∼4cm이다. 화관통은 끝에서 5개로 갈라져 뒤로 젖혀지고 겉에 털이 빽빽이 난다. 꽃 밑에는 잎처럼 생긴 포가 마주난다. 포는 타원 모양이거나 달걀 모양이고 길이 1∼2cm이다. 수술 5개, 암술 1개이다. 열매는 장과로서 둥글며 10∼11월에 검게 익는다.
겨울에도 곳에 따라 잎이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인동이라고 한다. 밀원식물이며 한방에서는 잎과 줄기를 인동, 꽃봉오리를 금은화라고 하여 종기·매독·임질·치질 등에 사용한다. 민간에서는 해독작용이 강하고 이뇨와 미용작용이 있다고 하여 차나 술을 만들기도 한다. 한국·일본·중국에 분포한다.
꺾이지 않는 불굴의 의지 忍冬
인동은 인동덩굴로 나무이다.
인동(忍冬)은 전국 각지의 산지 초입이나 들에서 자라는 덩굴식물이다.
잎은 마주 붙고 줄기에 털이 많으며 속은 비었다.
6~7월에 새로 자란 덩굴의 잎겨드랑이에서 가느다란 통꽃이 두 송이씩 핀다.
꽃잎 끝은 3장으로 갈라져 위로 젖혀지고 수술이 길게 밖으로 빠져 나온다.
인동덩굴을 금은화라고도 부른다.
인동은 그 꽃의 아름다움으로 사랑받는다.
인동꽃은 처음에는 흰색으로 피었다가 며칠 지나면 노란색으로 변한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흰 꽃과 노란 꽃이 섞여 피는 것처럼 보인다.
인동꽃을 금은화(金銀花)라고 부르는데, 이 이름은 금빛과 은빛의 꽃이 사이 좋게 섞여 핀다 하여 붙여 진 이름이다.
금색, 은색의 꽃은 티없이 깨끗한 맵시가 있고 향기도 좋으며 꿀이 많아 벌이 많이 모여든다.
어린 시절 참 많이도 쪽쪽 빨아댔던 꿀풀과 인동꽃...
인동은 그 이름도 많은데 꽃의 수술이 할아버지 수염과 같다고 하여 ‘노옹수’, 꽃잎이 펼쳐진 모양이 해오라기 같다고 하여 ‘노사등(鷺娑藤)’(인동꽃의 목이 길고 淸水한 자태가 학이 나는 모습을 닳았다 하여 鷺娑藤), 꿀이 있으니 ‘밀보등’, 귀신을 다스리는 효험있는 약용식물이라 하여 ‘통령초’ 라고도 하니 기억하여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서양에서는 꽃잎의 모양을 두고 트럼펫꽃(trumpet flower), 풍부한 꿀을 분비하는 것을 두고 허니 써클(honeysuckle)이라고도 한다.
인동은 여름꽃이다.
금은화는 여름이 시작될 무렵부터 아름다운 꽃들을 피워내기 시작하여 온 사방에 퍼트린다.
그런데 왜 이름을 참을 '忍' 겨울 '冬', 겨울을 이겨낸다는 뜻으로 지었을까?
따뜻한 남쪽 지방의 들녘에선 겨울에도 꽃을 피워 내고 낙엽이 지지 않는 파란 잎을 가진 인동을 보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아름답고 애절한 전설을 가지고 있기도 한 꽃인 인동(忍冬)은 이름 그대로 모진 겨울을 얇은 이파리 몇 개로 견디어 내는 인고의 장한 뜻이 있는 식물이다.
그러나 그 무성하게 자라는 성질과 기품있는 꽃이 어울리는 계절은 초여름으로 인동이 핀 것을 보고 우리는 여름이 온 것을 안다.
인동은 반상록성이다.
겨울철 남쪽 지방에 인동의 푸르른 잎도 강원 이북지방에서는 완전히 떨어지고 만다.
중부 지방의 경우 겨울이면 잎의 대부분이 떨어지지만 어린 가지에 남은 잎은 겨울에도 시들지 않고 그대로 봄을 맞이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겨울을 이겨내는 식물이라 하여 인동초(忍冬草)라고 부른다.
우리말로는 겨우살이풀, 겨우살이넌출이라 한다.
인동은 풀이 아닌 나무이다.
그런대도 우리는 ‘인동초’로 부르기도 한다.
인동은 덩굴성으로 풀(草)이 아닌 나무인데 말이다.
전 김대통령이 인동꽃을 무척 좋아하였으며 별호가 인동초라는 소문이 있었다.
즉 겨울의 시련을 참고 견디어 살아 있는 그 이름과 정신이 김대통령의 생애를 보는 듯하기 때문이란다.
이를 확인할 길은 없으나, 대통령에 당선되자 우리 나라 나무시장에서는 때아닌 인동덩굴 파동을 겪기도 했다.
생장력이 왕성하여 어디든 가리지 않는다.
밭둑, 길가, 숲 가장자리에서부터 볕이 드는 곳이면 어디든 쉽게 볼 수 있다.
줄기는 덩굴상태로 뻗어나가다 땅에 닿으면 마디에서 뿌리가 나고 새로운 개체로 자란다.
뜯어도 다시 돋아나고 길가에서 짓밟혀도 쉽게 뿌리를 내려 뻗어나간다.
그 강인한 모습에서 꺾이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배운다.
또 씨도 잘 맺어 꽃이 핀 곳에서는 초록색 열매가 달려 가을이면 까만색으로 익고 겨울에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인동의 겨울 열매는 산에 사는 조수류의 먹이가 된다.
그래서 인동덩굴이 우거진 풀숲에서는 작은 멧새들이 늘 끊이질 않는다.
눈 속에서 초겨울의
붉은 열매가 익고 있다.
서울 근교에서는 보지 못한
꽁지가 하얀 작은 새가
그것을 쪼아먹고 있다.
월동하는
인동(忍冬) 잎의 빛깔이
이루지 못한 인간의 꿈보다도
더욱 슬프다.
김춘수의 <인동(忍冬) 잎>
인동덩굴은 유럽과 미국에도 귀화된 식물이다.
인동덩굴은 우리나라 야산이나 들 어디에나 난다.
산기슭이나 논 밭둑, 골짜기 같은 곳에 많이 자라며 황폐하고 메마른 땅에서도 여간해서는 죽지 않는다. 동양 특산으로 유럽이나 미국에는 없었으나 2백 년쯤 전에 일본에서 미국으로 시집을 가서 지금은 그 땅에서 골칫덩어리가 될 정도로 맹렬하게 번식하고 있다고 한다.
인동은 200여년 전 일본을 방문한 스웨덴 식물학자 진베리가 이 꽃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취했다고 한다. 그는 일본산 인동이란 뜻으로 로니세라 자포니카(Lonicera japania)로 명명하여 유럽에 전했다.
지금은 북아메리카에도 전해져 야생생태로 퍼져나가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들어 온 외래식물이 토종식물을 누르고 마구 번식하여 문제가 되는 일이 드물게 있는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귀화식물로, 흰꽃 천지를 이루는 개망초는 유럽에서, 씨앗기름이 살 빼는데 효과가 좋다는 달맞이꽃은 미국에서 건너왔다.
지금은 고향에서 가졌던 싱거운 성질을 버리고 이 땅에 적응하여 그 성질이 바뀌었다.
우리나라에서 난 달맞이꽃 씨앗기름의 약효와 품질이 세계에서 가장 좋다는 것이 그 증거다.
옛 문헌들을 들추어 보면 인동이 이땅에서 자라면서 우리 선조들과 함께 생활해온 역사가 그리 만만치 않다.
인동이 길조를 상징하는 식물이 되었음은 물론이며 이에 얽힌 전설까지 있다.
또 고구려 중묘 벽화나 중화지역의 진파리 1호 고분 벽화에서도 인동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통일신라시대에도 인동당초평와당이라하여 기와 문양이 있는 등 인동의 무늬를 아로새긴 기와나 청자를 볼 수 있다. 또 고구려 중묘 벽화나 중화지역의 진파리 1호 고분 벽화에서도 인동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통일신라시대에도 인동당초평와당이라하여 기와 문양이 있는 등 인동의 무늬를 아로새긴 기와나 청자를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고구려 고분 벽화에 다양한 인동당초문이 보인다.
그중 집안 제4호, 제5호분이나 사신총의 인동당초문은 걸작으로 꼽고 있다.
백제 무녕왕릉에서 출토된 왕과 왕비의 관식은 불꽃 문양과 보상화가 결합된 당초문이라 할 수 있다.
또 통일신라로 넘어오면서 서역에서 전해진 포도, 석류, 연꽃과 결합하여 여러 가지 형태의 당초문이 나타난다.
인동덩굴에 포도송이가 곁들여지면 포도당초문(葡萄唐草紋), 석류가 들어있으면 석류당초문(石榴唐草紋)이 된다. 그 외에도 연화당초문(蓮花唐草紋), 보상당초문(寶相唐草紋), 모란당초문(牧丹唐草紋), 국화당초문(菊花唐草紋) 등 여러 가지이다.
인동꽃의 꽃말은 '헌신적인 사랑',
인동덩굴은 '아버지의 사랑'이다.
인동꽃의 순결하고 청초한 모습에서 첫사랑의 순정과 헌신을 느끼게 되는가 보다.
덩굴이 돌담이나 바위를 안고 있는 모습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스럽게 부둥켜 안고 있는 모습을 연상할 수도 있다.
감싸고 오른 돌담에
마파람은 와 머물고
그 잎새 이마에도
물감을 푸는 유월
꿩 울음 덩굴에 걸려
산기슭을 흔든다.
돋아난 갈색 털이
가쁜 숨에 쓰러지고
빛 바랜 노란 얼굴
손톱 끝에 시달려도
바다빛 향기를 뿜어
발걸음을 붙든다.
멍이 든 가슴마다
쓸어 주는 금은(金銀)의 미소
귤나무 여름 순(筍)도
목을 빼어 반기는데
뜨거운 아버지 정을
청명 앞에 쳐든다.
-김재황 <인동덩굴은>
선인들은 인동으로부터
인동은 귀신을 쫓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인동덩굴은 시계바늘 방향으로 감아 오른다.
그 습성을 두고 시골사람들은 인동이 귀신을 쫓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왼 새끼를 꼬아 금줄을 치듯 인동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감는 성질이 귀신을 옭아맨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인동을 벽사등, 벽귀등이라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인동은 나무를 감을 때는 반드시 오른쪽으로 감는데 식물에 따라 감는 방향이 대개 정해져 있다.
인동이나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감고 칡, 나팔꽃, 더덕, 강낭콩 등은 왼쪽으로 감는다.
감는 성질이 왜 식물에 따라 다른지는 알 수 없고 다만 식물의 천성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왼쪽으로 감는 덩굴을 풀어 오른쪽으로 감아두고 다음날 보면 다시 왼쪽으로 감겨져 있다.
보통 왼쪽으로 감는 덩굴이 많고 새박덩굴 같은 것은 왼쪽이거나 오른쪽이거나 마음대로 감는다.
역경을 이겨내는 정신이 길러진다고 믿었다.
옛 사람들은 인동이 겨울을 이겨내듯이 고난을 물리치는 슬기를 기르기 위해 인동으로 인동주(忍冬酒)를 빚어 마셨다.
인동문 창살을 달고 인동무늬를 넣은 책보자기로 책을 싸면 역경을 이겨내는 정신이 길러진다고 믿었다.
인동과 관련된 민속신앙도 재미있다.
경상도에서는 부녀자들이 산후로 허리가 아프면 인동덩굴을 걷어다 허리에 감는다.
이렇게 하면 허리 아픈 것이 깨끗이 낫는다고 믿고 있다.
또 어떤 지방에서는 정월 보름에 인동덩굴을 걷어다 마당에 불을 피운다.
이렇게 하면 잡귀가 인동이 타는 냄새에 근접을 하지 못하고 모두 달아난다고 한다.
인동에 얽힌 전설
옛날, 중국 안탕산에 약초를 캐는 한 노인이 있었는데 이름은 임동(任冬)이라고 불렀다.
그는 험한 안탕산을 마음대로 오르내리며 늑대, 호랑이 표범 등과 어울렸다.
어느 해 여름 안탕산 밑의 마을에 눈이 빨갛게 충혈되고 코와 입부터 시작해서 온몸에 고름이 나오게 되는 괴질 피부병이 유행했다.
수많은 사람이 괴질에 걸려 온 몸에서 고름이 나오고 고통으로 신음했으나 이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은 없었다.
임동 노인은 이 괴질을 고칠 수 있는 약을 캐오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약초 망태기를 둘러메고 안탕산 백이봉으로 올라갔다.
임동 노인에게는 쌍둥이 딸이 있었는데 이름을 금화(金花)와 은화(銀花)라고 했다.
아버지가 안탕산으로 올라간 뒤로 쌍둥이 자매는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도 임동 노인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 날, 쌍둥이 딸이 아버지를 기다리다가 집 앞에 있는 큰 나무에 기대어 잠이 들었는데 꿈에 아버지 임동 노인이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한 손에 금색과 은색의 꽃이 피어 있는 풀을 쥐고 있는 것이었다. 꽃에서는 맑고 은은한 향기가 났다.
똑같은 꿈을 꾼 자매는 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아버지가 하던 약초 캐던 일을 이어받기로 결심하고 준비를 갖추어 안탕산 백이봉으로 올라갔다.
안탕산 백이봉은 늘 구름에 가려 있었고 61개의 봉우리와 46개의 동굴이 있었다.
금화와 은화는 이들 봉우리와 동굴을 모두 다니면서 약초를 찾아 헤맸다.
그런데 금화와 은화가 지나간 발자국에서 한 개의 푸른 덩굴이 자라나 금빛과 은빛의 꽃을 피우더니 은은한 향기를 풍겼다.
푸른 덩굴이 말을 하였다.
“괴질을 고치려면 끓여 먹어야 해.”
금빛과 은빛의 꽃이 대꾸했다.
“열을 내리고 독을 없애려면 끓여 먹으면 낫지.”
푸른 덩굴과 금빛 은빛의 꽃들이 서로 말을 하기 시작하니 건너편에 있는 봉우리에서도 메아리처럼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 소리는 점점 커져서 마침내 온 산이 함성으로 가득 찼다.
마을 사람들이 이 소리를 듣고 모두 산으로 올라가 금빛 은빛 꽃을 따고 덩굴을 잘라 끓여 먹으니 곧 열이 내리고 피부병이 나았다.
그러나 임동 노인과 금화 은화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임동 노인은 약초 덩굴이 되었다 하여 그 덩굴은 인동(忍冬)이라고 불렀고, 금화 은화 자매는 꽃이 되었다 하여 그 덩굴의 꽃을 금은화(金銀花)라고 불렀으며 그 뒤로 괴질 전염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썼다고 전한다.
옛날, 중국에 어느 착한 부부가 있었는데 이 부부한테는 금화와 은화라는 어여쁜 쌍둥이 딸이 있었다.
금화와 은화는 서로를 지극히 사랑하여 늘 같이 지냈고 살아서도 함께 지내고 죽어서도 한 무덤에 묻히자고 약속을 했다.
그런데 그들이 자라 시집 갈 나이가 되었을 때 그 마을에 몹쓸 전염병이 유행하여 언니인 금화가 그만 그 병에 걸렸다.
동생 은화는 정성을 다해 언니를 간호했으나 보람도 없이 언니는 점점 약해져만 갔고 마침내 은화도 언니와 같은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다.
두 자매는 임종하기 전에 부모님께 '우리가 죽으면 약초가 되어 이 세상에 다시 나서 세상에 우리와 같은 병으로 죽는 사람이 없게 하겠습니다'고 유언을 남겼다.
금화와 은화는 소원대로 죽어 한 무덤에 묻혔는데 이듬해 봄 그 무덤에 한 줄기 가느다란 덩굴이 자라났다.
덩굴은 해가 지나면서 무성해지더니 여름이 오자 금색과 은색의 예쁜 꽃들이 사이좋게 뒤섞여 피어났다. 사람들은 금화와 은화의 혼이 꽃으로 피어난 것이라 하여 금은화라 불렀고 질병을 고치는 약으로 쓰게 되었다.
인동은 옛부터 약으로 또 차로 애용되었다.
꽃을 먹기보다 향을 취하는 금은화차
금은화차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인동의 꽃을 차에 띄워 직접 향을 취하는 방법이다.
금은화차는 물론 인동꽃으로 조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동꽃을 직접 먹는 것은 아니고 그 향을 취해 차를 조제한 것이다.
먼저 질 좋은 녹차를 한지나 베보자기에 싼다. 미리 따다 놓은 인동꽃을 사기그릇에 담고 그 속에 차주머니를 묻어 뚜껑을 닫고 하루를 재웠다가 꺼내 차를 우려내 마신다. 녹차에 인동꽃 향을 배게 하여 그 향을 취하는 방법이다.
연꽃 속에 차를 넣었다가 꺼내는 하화차(荷花茶)를 만드는 것과 같다.
자세하게 알아보면 좋은 녹차를 끓이고 8할 정도로 식힌 뒤 찻잔에 붓고 활짝 핀 꽃을 한두 송이 띄운다. 20~30분정도 지나 인동꽃이 숨이 죽어 시들해 지면 꽃을 건져내고 마신다. 너무 오래 잔에 두면 천한 분향 냄새가 나고 일찍 건져내면 차향이 엷어 맛이 떨어진다.
또 다른 한 가지 방법은 신선한 인동꽃을 따 밀폐된 용기에 넣고 미리 한자에 싸둔 녹차를 묻어둔다.
하루를 재웠다 이튿날 꽃 속의 차 봉지를 꺼내 미지근한 물에 우려내 마신다.
꽃을 넣는 용기는 유리그릇이나 도자기로 된 것을 쓰는 것이 좋다. 금속제 용기는 차와 꽃향기가 산화 과정에서 화학반응을 일으켜 차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
인동차는 여름에 마시는 차다. 따라서 인동꽃과 함께 녹차를 물에 우려낸 뒤 냉장고에 보관 차게 해서 마셔도 좋다.
인동은 항균작용이 있는 약재이다.
아무리 좋은 약재라고 해도 병이 있는 사람이 치료를 위해 약을 써야지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된다.
특히 약재를 무슨 건강식으로 오인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인동은 항균작용이 있는 약재이지만 예방을 목적으로 장기간 복용하면 간장이나 신장에 장애가 올 수 있다. 약재는 반드시 한의사의 진맥과 처방에 따라 복용해야 한다.
인동은 옛부터 약으로 쓰였는데 본초강목을 보면 인동은 귀신의 기운이 몸에 덥쳐 오한과 고열이나고 정신이 어지러워지고 급기야는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오시병을 고치는 명약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실제 한방에서는 화농성 종기 세척제로 쓰며 최근에는 장에서 그 골치덩어리 콜레스테롤의 흡수를 저지한다 하여 활발한 연구가 진행중이다.
인동꽃으로 하는 목욕도 있고 신장에 좋다는 인동술도 있지만 이 보다 더 운치있는 것이 인동차다.
노랗게 변한 꽃잎을 따다가는 밝은 그늘에 말려 뜨거운 물에 우려마시면 향기나 풍류가 쟈스민차 부럽지 않다.
인동은 우리나라 곳곳의 산기슭, 논밭둑, 개울가. 길섶에 흔히 자라므로 구하기도 쉽고 줄기, 잎, 꽃, 뿌리까지 약으로 쓰므로 버릴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