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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은 요서(만주 서쪽)에 있었다.

여수룬1 2007. 10. 10. 14:09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은 요서(만주 서쪽)에 있었다.

 

약 4천 2백년전부터 쓰여진 책이라하는 산해경(山海經)이라는 중국 고대책이 있다.  그 산해경(山海經)에 보면 고조선에 대한 글들이 나온다.

 

(산해경 원문 - http://khaan.net/history/chinadata/sanhaekye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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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경(山海經) 해내경(海內經)]


동해의 안쪽, 북해의 주변에 나라가 있으니 조선(朝鮮)이라 한다.

하늘이 지극히 아끼는 그 사람들은 물가에 살고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한다.

[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 名曰 朝鮮 天毒 其人 水居 偎人愛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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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동해]란 [중국의 동해] 즉 우리가 말하는 [서해(황해)]이고 [북해]란 [발해] 즉 [서해 위 바다]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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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산해경 내용을 보아도 중국대륙 동해안과 난하, 요하 지역도 고조선의 영역이었다.

 

고조선에 대한 위 기록이 [산해경(山海經)] 의 여러 부분 중에서도 [해내경(海內經)]편에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시라.

 

[해내경(海內經)]이란 산해경 중에서도 [황해의 중국쪽 지역]을 기록한 것.

중국고대기록에서 [해(海)]라 하면 [황해]를 뜻한다.

( 우리의 동해는 보통 대해(大海)라 부른다.)

 

[해(海)] - 황해

[대해(大海)] - 우리의 동해

 

산해경에서 한반도에 대한 것은 [해외동경(海外東經)]편에 기록되어 있다.

중국입장에서 [바다 건너 동쪽] 이라는 뜻.

 

그러므로 [해내경(海內經)]의 위 기록은 고조선이 [황해의 중국쪽과 발해 부근 지역에 존재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

 

이 중국대륙 동해안과 난하, 요하 지역은 변한 또는 변조선이라 불리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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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고대한국문명 ] 즉 [마 문명] <- 관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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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은 마한, 진한, 변한의 영역을 대강 그린 것.이 삼한 또는 삼조선이 바로 고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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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한인들의 이동]

 

마한 진한 변한    <- 관련글

 

 

고대 중국기록에는 고조선에 대한 기록이 중국과 가까운 변한(변조선)에 대한 것이 많다.

 그래서 [산해경의 해내경(海內經)]에도 [ 중국 동해안과 발해 북쪽]에 고조선이 있다고 써 놓은 것.

 

그런데 산해경의 [해내북경(海內北經)]에 보면 고조선이 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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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은 열양(列陽)의 동쪽에 있다. 해(海)의 북쪽이고 산(山) 남쪽이다.

열양(列陽)은 연(燕)나라에 속했다. 

 

朝鮮在列陽東 海北山南 列陽屬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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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연(燕)나라는 북경을 중심으로 존재했던 나라. 그런 연나라와 조선의 경계가 붙어있었다는 소리. [해(海)의 북쪽]이란 말은 발해(황해 북쪽 바다)의 북쪽 즉 만주서부 산해관 부근 지역을 말한다.

 

그런데 이 귀절에다가 약 1천 7백년전 인물인 중국 진(晋)나라의 학자 곽박(郭璞)이 주석을 붙여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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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지금의 낙랑현(樂浪縣)이다. 기자(箕子)의 땅이었다.

(열양(列陽)의) 열(列)이란 강 이름이다. 지금의 대방(帶方)땅에 있다. 

 

[郭璞云 : 朝鮮今樂浪縣 箕子所封也 列亦水名也 今在帶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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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경에는 낙랑이 발해의 북쪽에 있다 하고 열양(列陽)의 동쪽에 있다 했다.

 

곽박은 [열양(列陽) = 대방]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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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이 [해(海 : 발해)의 북쪽]에 있었다는 산해경 원문  그리고 곽박의 말 등을 보면 낙랑은 위 그림처럼 발해 북쪽에 있었고 대방(帶方)은 낙랑의 서쪽 즉 열양(列陽)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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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위 그림의 지역에서 '臨屯(임둔)'이라는 글자가 적힌 봉니(封泥)가 다량 출토되었다.

그리하여 한사군이 한반도가 아니라 위 그림의 지역에 있었다는 근거가 또 드러났다 하겠다.

 

(보강) 한사군은 한반도에 없었다.    <- 관련글

 

 

봉니(封泥)란 임금이 멀리있는 신하에게 편지 등을 보내면서 도중에 누가 뜯어보지 말라고 진흙을 바르고 도장을 찍어놓은 것. 뜯어보면 들킨다.

위 지역에서 [임둔]이라고 써 있는 봉니가 잔뜩 발견되었다는 것은 거기서 [임둔태수] 등이 임금의 봉니를 뜯어보았다는 말. 그러므로 거기가 [임둔]이었다는 말.

 

위와 같은 사실 등을 근거로 보면 한사군의 위치는 대강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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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분포도]

 

한사군은 변한(변조선)지역에 있었고  고대한국의 중심영역인 [고인돌지역]에는 들어오지 못했다.

 

고대한국의 중심영역인 [고인돌지역]에는 들어오지 못했다.

 

 

그리고 곽박이 위 그림의 [발해북쪽 한사군 지역]이 기자(箕子)의 땅이었다고 했듯이 기자(箕子)조선은 고조선의 변방(변한)에 존재했던 것.

 

( 고조선의 중심지역은 위 고인돌 지역. 산동반도와 일본의 고인돌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 시대가 한반도보다 훨씬 늦다.)

 

기자(箕子)조선은 나중에 위만조선으로 바뀌는데 이 역시 변한(변조선)에서 있었던 일일 뿐 고조선의 중심지역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산해경(山海經)에서 [해내경(海內經)]편과 [해내북경(海內北經)]편 즉 '황해바다 중국쪽 지역'에 고조선이 나오고 후대의 중국 학자들이 그곳이 낙랑, 대방이다고 했다는 것 그곳이 [기자의 땅]이다 했다는 것 그리고 그 기자조선이 위만조선으로 바뀌었지만 둘 다 고조선의 변방이었을 뿐이었다는 것.

 

한사군은 요서(만주 서부)에 있었고 한나라는 한반도에 들어오지 못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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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箕子)는 여러가지로 보아 훌륭한 인물로 여겨진다. 그런데 기자(箕子)는 왜 고조선으로 왔을까. 기자(箕子) 은()나라의 현인()인데 주()나라의 무왕()이 은나라를 빼앗자, 이러한 행동이 도리에 어긋난다 하여 3천여년전에 고조선으로 망명한다. 

은()나라는 동이[]족 즉 고대한민족이 세운 나라로 유명한 나라이고 기자(箕子)는 그 은나라 왕족이었다.

즉 기자(箕子)는 고대한민족의 후손이었고 중국이 도리에 어긋나게 나가고 있다고 판단하자 [선조의 나라]인 고조선으로 망명한 것.

 

기자조선 마지막 왕인 준왕()의 성()이 청주한씨()다. 즉 기자(箕子) 후손들이 [한(韓)]이라는 성씨를 썼는데 이는 기자(箕子)가 본래 한민족의 후손이고 [은나라 왕조] 역시 한민족의 후손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하겠다.

 

갑골문(옛 한자)들은 만주, 중국동해안, 은나라 유적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이는 만주와 중국동해안 즉 고조선 영역에서 쓰이던 한자를 [은나라 왕조]가 중국대륙에 전파했다는 얘기가 되겠다.

 

만주와 중국동해안에서의 은나라유적보다 더 빠른 갑골문들의 발견은 중국당국이 어이없게도 '동북꽁정을 감행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중국문명이란게 원래 고대한민족에게서 전해받은 것이라는 사실이 가면 갈수록 드러나므로. 중국 옛 역사책인 [후한서(書)]에 다음과 같은 귀절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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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방(東方)을 [이(夷)]라 한다. [이(夷)]라는 것은 "근본이 되는 뿌리"라는 의미이니, 어질고 살리기를 좋아하여 마치 만물이 대지로부터 솟아나오는 것과 같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동이족은) 천성이 훌륭하여 도덕(道德)이 펼쳐지기 쉬워 군자불사지국(君子不死之國 -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 라 불리워지게까지 이르게 되었다. 때문에 공자는 구이(九夷)에 가서 살고 싶어했다.

[東方曰夷.] 夷者, 也, 言仁而好生, 萬物 地而出. 故天性柔順, 易以道御,

至有君子不死之國焉. 故孔子欲居九夷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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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귀절에서 [그래서 공자는 구이(九夷)에 가서 살고 싶어했다.(故孔子欲居九夷也)] 라는 귀절이 있다.

 

구이[九夷] = 동이[]

 

도덕(道德)이 살아있는 곳이므로 공자도 가서 살고 싶어했고 기자(箕子)는 정말로 고조선으로 왔다.

 

논어 []에 보면 다음과 같은 귀절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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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께서 동이[夷 = 구이九夷]에 가서 살기를 원하셨다. 어떤 사람이 '누추하지 않겠습니까?'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君子)가 사는데 무슨 누추한 게 있겠는가? 

[子欲居九夷 或曰 陋如之何 子曰 君子居之 何陋之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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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스스로를 군자라 해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위 글의 [군자(君子)]란 공자 자신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위 글의 [군자(君子)]가 만약 기자(箕子)를 뜻하는 것이었다면 '옛날에 군자가 살았다'고 표현되었어야 했는데 (기자(箕子)는 공자보다 수백년 전 인물.)

위 글은 현재형.

 

그러므로 [군자(君子)가 사는데 무슨 누추한 게 있겠는가?] 라는 표현은 공자는 당시 동이[夷 = 구이九夷 = 고대한민족] 사람들을 군자(君子)라 하고 있는 것.

즉 공자는 [군자(君子)의 나라] 즉 당시 고조선에 와서 살고 싶어 했던 것.

 이에 대해서는 중국의 손꼽히는 정사(正史) 중 하나라는  [후한서(書)]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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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東方)을 [이(夷)]라 한다. [이(夷)]라는 것은 "근본이 되는 뿌리"라는 의미이니, 어질고 살리기를 좋아하여 마치 만물이 대지로부터 솟아나오는 것과 같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천성이 훌륭하여 도덕(道德)이 펼쳐지기 쉬워 군자불사지국(君子不死之國 -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 라 불리워지게까지 이르게 되었다.
때문에 공자는 구이(九夷)에 가서 살고 싶어했다.

[東方曰夷. 夷者, 也, 言仁而好生, 萬物 地而出.

故天性柔順, 易以道御, 至有君子不死之國焉. 故孔子欲居九夷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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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箕子)가 중국에 도리가 무너졌다 하여 고조선으로 망명했던 것처럼 공자도 고조선으로 오고 싶어 했던 것.

  

 

[한반도 중남부에 있던 대인국(大人國)과 군자국(君子國)]    <- 관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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