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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로하(瓠瀘河)는 말이 없다!

여수룬1 2007. 7. 13. 00:39
    호로하(瓠瀘河)는 말이 없다! 임진강(臨津江 244km)은 강원도 법동군 용포리(龍浦里)에 있는 두류산(頭流山 1,323m) 에서 발원(發源)하여 북한의 개성시 판문군과 경기도 파주군 사이에서 한강(漢江)과 합수하여 조강(祖江)을 이루고 다시 예성강(禮成江)과 합쳐져 황해로 흘러가는 강이다. 임진강의 옛 이름은 호로하(瓠瀘河) 또는 표하(瓢河)라고 불리며, 삼국시대 때부터 이곳은 상당히 중요한 전략적 요충(要衝)이었고 조선시대에는 호로탄(瓠蘆灘)이라 하여 장단(長湍)을 통해 개성(開城)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길목이기도 했다. 한성백제의 영역이었던 호로하(瓠瀘河) 유역은 고구려의 전성기인 광개토대왕 (廣開土大王, 영락대왕(永樂大王) 375 ~ 413 묘호: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과 장수왕(長壽王 394 ~ 491 ) 때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 고구려는 남하루트에 이곳 호로고루(瓠蘆古壘)성을 비롯해 당포성, 은대리성 등 크고 작은 성과 보루(堡壘)를 축조하기 시작하여 아차산성(阿且山城)에 이르는 보급선을 확보하고 백제의 수도 한성(漢城)을 함락, 백제의 제21대 왕(개로왕(蓋鹵王 ? ~ 475 재위 455~475)을 죽인다. 이로써 백제는 한성에서 웅진(熊津)으로 천도하지 않을 수 없는 계기가 되었다.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長南面)의 옛 나루터 고랑포(高浪浦)를 중심으로 한 임진강 절경을 흔히 고호팔경(皐湖八景)이라 한다. 현무암 대지가 오랜 강물의 침식작용으로 깎아지른 수직절벽(垂直絶壁)으로 변해 병풍처럼 펼쳐진 천혜의 절경으로 이름난 곳이다.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長南面) 원당리(元堂里)에 있는 호로고루지(瓠蘆古壘址)는 삼국시대 성터로 임진강 북쪽 기슭의 현무암 단애 위에 있는 삼각형 성터로 호로고루(瓠蘆古壘)성을 쌓았던 이곳을 지역 사람들은 '재미산(財尾山)' 또는 '재미성(財尾城)'이라고 부르며 임진강 하류 쪽에서 배를 타지 않고 도하할 수 있는 최초의 여울목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장마철을 제외하고는 물의 깊이가 무릎 정도밖에 되지 않아 말을 타거나 걸어서 건널 수 있으며, 이 곳에서부터 임진강 하류 쪽으로는 강폭이 넓고 강심이 깊어진다. 1950년 6·25전쟁 발발 당시 북한군 전차부대도 개성에서 문산쪽으로 직진하지 않고 20㎞나 우회, 호로고루 여울목을 도하했다고 한다. 호로하(임진강)는 이렇게 삼국의 국경하천이었으며, 훗날에는 신라와 당나라가 양보할 수 없는 한판 승부를 벌인 곳이기도 하다. 또한 호로하(임진강)는 서기 668년 동명성왕이 개국한 이래 동북아 전역을 호령하던 대제국 고구려가 멸망하고 671년 양만춘의 안시성이 당나라 군에 함락되는데 이어 고구려 부흥 운동 세력들이 672년 백수산(白水山) 전투와 673년 이곳 호로하(瓠瀘河) 전투에서 나당(羅唐) 연합군과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를 겨루다가 괴멸(壞滅) 당하고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갈 수 밖에 없었던 사연을 간직한 곳이다. 삼국시대 때인 4 ~ 7 세기에 고구려와 신라는 16차례, 고구려와 백제는 31차례 (혹은 33차례), 백제와 신라는 29차례에 걸친 크고 작은 전투를 치르며 서로 영역을 뺏고 빼앗겼다. 고랑포에는 신라의 왕도인 경주 지역을 벗어나 타 지역에 있는 유일한 신라왕릉인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릉이 있다. 1,500 여 년 전 삼국 시대(고구려, 백제, 신라)의 국경이었던 호로하(임진강)는 지금 남북 분단(分斷)의 상징(象徵)이 되어 말없이 흐르고 있다. <記 丁亥 盛夏 淸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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