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차도(班次圖)~정조임금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이 있는
(조선 정조임금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이 있는
수원화성으로 찾아가는 그림 반차도(班次圖)를
청계천에 타일로 복원한 것을 보시겠습니다.
아래 사진들은 반차도(班次圖)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정조는 젊은 나이에 의문사 했는데
개혁을 하려다가 독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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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감사와 총리대신
임금의 행차를 맞는 화성을 관할하는 지방관인 경기감사 겸 이날 행차를 총괄하는
임시기구 정리소(整理所)의 정리사 (整理使) 중 하나인 서유방(徐有防)이 당연히 맨 앞에 나오고,
우의정 채제공이 정리소(整理所) 총책임자- 총리대신으로 바로 뒤에 있다.
이어 깃발부대와 악대가 나온다.
금군 (禁軍)
선구금군(先驅禁軍) 25인 마작대가 다섯 열을 지어 나온다.
나인(內人) 들
혜경궁과 정조대왕의 두 누이동생- 군주(郡主)의 시중을 드는
나인 (宮女) 18명이 얼굴을 가린 채 말을 타고 있다.
자궁의롱마 (慈宮衣籠馬)
혜경궁의 옷을 넣은 농 실은 말이 나온다.
정가교(正駕轎)
임금의 정가(正駕)가 나오는 데 이날 대왕은 정작 이 가마를 타지 않고
자궁(慈宮) -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뒤를 말을 타고 따른다.
수라가자(水刺架子)
혜경궁이 들 미음 등을 실은 마차가 나온다.
자궁가교(慈宮駕轎)
이날 행차 명목은 어머니 회갑연을 새로 지은 성 화성에서 가지는 것이므로
그 주인공 혜경궁 홍씨의 가마가 무예청 별감들의 호위를 받으며 나온다.
혜경궁의 가마는 이날을 위하여 새로 만든 것으로
정리의궤에는 어떤 종류의 장인 몇 명이 동원되어, 비용이 얼마 들고
그 스펙은 어떻다는 이야기가 그림과 함께 나오니
조선왕조 기록문화의 진수를 엿볼 수 있다.
임금의 좌마(座馬)
자궁(慈宮)-혜경궁의 뒤를 정조대왕이 말을 타고 뒤따라 오는 데
무예청 별감과 협마순노의 삼엄한 호위를 받고 있다.
임금을 직접 그리지 않는 관례에 따라 말 위는 비어 두었다.
장용영(壯勇營) 마작대(馬作隊)
장용영 마작대가 행진한다.
정조 대왕은 즉위 후 5영(營)과 별도로 장용영(壯勇營)을 만들고
기존 5영도 이 장용영에 흡수 시켜 버리니 곧 정조의 왕권 강화를 위한
친위부대 라 할 수 있다. 화성에는 서울과 별도로 장용영 외영을 둔다.
반차도에 그려진 인원 합하여 을묘원행에 동원 된 총인원 6천 여명 중
4,500 명 가량이 호위병이고, 다시 그 중 3천명이 장용영(壯勇營) 군사였다.
도승지와 각신
임금을 수행하는 문신들이 뒤 따른다.
총 든 군인들
난후금군과 총 든 군인으로 반차도 그림은 끝이 난다.